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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부탁해] 에서 발췌함

 

'종북' 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글이다. 또한 기존 정부에 반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종북'이라고 규정해 버리는 왜곡된 용어 정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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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이란 이름의 유령이 한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여기도 종북, 저기도 종북, 이 유령을 잡을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종북이란 용어의 본적지는 보수진영이 아니라 진보진영이었다.

2001년 12월 당시 원용수 사회당 대표가 민주노동당의 통합 논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사용했다.

"민중의 요구보다 조선노동당의 외교정책을 우위에 놓는 종북 세력과는 함께 당을 할 수 없다." (<연합뉴스> 2001년 12월 21일 자)

 

 

종북 논란은 2008년 민노당 내부에서 또다시 불거진다.

당내 진보신당파가 일심회 사건에 연루된 당직자 제명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수파인 민족해방(NL) 계열을 '종북주의'로 규정한 뒤 탈당한 것이다.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을 계기로 대중 속에 자리 잡았지만 그 의미는 여전히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12부(재판장 배호근)는 2013년 5월 이정희 통진당 대표 등이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판결문에서 종북을 이렇게 설명한다.

"[1] 북한과 연관되었다고 인정된 사건들에 있어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부터 [2]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 나아가 [3]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사회세력에 대해서까지 다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

한 판사 출신 법조인의 설명이다.

"어떤 집단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정치적 구호에 가까운 셈이지요. 그래서 더더욱 신중하게 쓸 필요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확대해서 사용하면 여론재판과 같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이다. 검찰 공소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시, 강조 말씀을 통해 '종북좌파 척결'을 오, 남용했다고 제시하고 있다.

"종북좌파들이 한 40여 명이 여의도로 진출했는데..."(2012년 4월 20일)

"국책사업 등의 성과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면 종북좌파들의 현혹에 넘어갈 수 있으므로..."(같은 해 6월 15일)

심리전단 직원들이 야당 후보와 정부 정책에 관한 댓글을 달고 트윗을 전송한 것도 '종북'프레임에 따른 활동이었다.

​그 프레임을 잘못 확장하면 정부 입장에 동조하는 언행 말고는 모든 것이 종북으로 분류될 위험이 있다.

진짜 종북세력은 어떻게 하느냐고?

[3]번 유형에 해당하는 이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 실정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이석기 내란음모 혐의'처럼 유, 무죄를 가리는 것이다.

[1]번이나 [2] 번까지 종북 카테고리 속에 집어넣는 건 사상의 자유, 토론의 자유를 억누르는 결과를 빚고 만다.

그들의 주장을 얼마든지 반박하고 질타할 수 있지만 분명한 근거 없이 종북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생각과 표현의 자유는 북한식 전체주의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가치다.

한 로스쿨 교수는 "종북이란 과장된 공포의 언어로 시민들을 위축시키는 일이야말로 북한의 유일사상 체제를 뒤따라가는 것, 즉 종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정부, 여당의 방침과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국민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은 묵과하지 않을 것"이란 대통령 말씀에 고개를 갸웃거린다고 해서 종북, 좌빨로 비치지 않을지 걱정해야 한다면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이제껏 자신을 보수주의자라 자부해 온 이들까지 '그렇다면 나도 종북일까' 되내게 하는 게 오히려 체제에 대한 위협 아닐까.

우리가 할 일은 생경하고 철없는 말들을 종북으로 뭉뚱그리는 게 아니다.

 

종북세력([3]번을 의미)이 '무해한 광신도'가 되게끔 헌법 정신을 뿌리내리는 것이다.

항균 능력을 키워 '건강하게'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얻은 건강이 진정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민주주의를 꽃피우게 해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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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2013년 8월 검찰이 '이석기 내란음모' 수사에 착수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 법무부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한국 사회에 종북 논란이 불붙었다. 나는 '종북' 딱지를 남발하는 건 오히려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생각에 딱지를 붙이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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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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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빈치 코드에 숨은 거짓과 진실

 

저자: 리처드 어베니스(Richard Abanes)

 

 

 

주제: 예수의 신성에 대한 이슈

 

59~60 page

 

 

 

예수의 신성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그 때까지 예수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그저 한 사람의 예언자일 뿐이었다.” (다빈치 코드 1 357~358page)

 

진실: 니케아 공의회는 예수의 신성을 결정하는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것 이전에 가장 긴급한 문제는 아리우스라 불리는 한 남자와 연루되었다.

 

 

도마가 예수께 했던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요한복음 20 28)이라는 말에서 입증되듯,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감하시던 때 이미 그리스도의 신성은 동의 되었다. 요한복음 1 1, 디도서 2 13, 히브리서 1 8~10절 그리고 베드로후서 1 1절과 같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서도 예수의 신성은 잘 나타난다.

 

 

 

2세기가 끝날 때까지 이러한 믿음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견고하게 믿어졌다. 예수를 묘사한 다음의 표현들을 생각해 보라: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 150년경) : “하나님의 말씀으로 잉태한 독생자, 하나님” ; “하나님이시며 만군의 주

 

이레니우스( 185년 경) :우리의 주, 하나님, 구세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200년 경) : “참으로 가장 분명한 하나님,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온 우주의 주와 동등하시다.”

 

 

 

 

 

예수는 결혼했는가?

 

62page

 

이는 영지주의 복음서에서 현저하게 되풀이 되어 나오는 당혹스러운 주제이다. 막달라 마리아.. 구체적으로 말해,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했다는 사실이다.” (다빈치 코드 2 13페이지)

 

진실: 나그 함마디 문서들 중에 있는 영지주의 복음서-진실의 복음서, 도마 복음서, 빌립 복음서- 중에 그 어떤 것도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가 결혼했다라는 언급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마리아 복음서(Gospel of Mary)도 이 문제에 대해 마찬가지로 침묵하고 있다.

 

 

 

62~63page

 

빌립 복음서는 구세주의 반려자는 막달라 마리아라고 밝히고 있다. 모든 제자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한 그리스도는 그녀의 입에 종종 키스하곤 했다. 나머지 제자들은 이를 불쾌하게 생각하고 그에게 불평을 털어 놓았다. 그들은 예수께 당신은 왜 우리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합니까?”라고 말했다.. 모든 아람 학자들은 당신에게 동료라는 단어가 그 당시에는 정확히 배우자라는 뜻이었다는 사실을 알려 줄 것이다.” (다빈치 코드 2 15~16페이지)

 

 

 

진실: 빌립 복음서는 결코 아람어로 쓰여지지 않았다. 이 복음서는 이집트어의 후대 형태인 콥트어로 쓰여 졌다. 그리고 이것조차도 아람어가 아니라 그리싀어로 쓰여진 초기 문서의 번역이다.

또한, 덴버 신학교의 그레그 블롬버그 교수에 따르면, “표준적으로 동료가 배우자를 의미하는 아람어나 히브리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카고 신학교에서 초기 교회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마가렛 미첼(Margaret Mitchell)교수도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첼에 따르면, 다빈치 코드가 일반적으로 친구 또는 동료로 번역되는그 단어를 잘못 번역하고 있다고 한다.

 

 

 

 

 

예수의 혈통에 대한 검증

 

66~67page

 

수 많은 역사가들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왕실 연대기는 상세하게 기술되고 있다.” (다빈치 코드 2 26page)

 

진실: 댄 브라운은 학구적인 무게를 추가하고 역사학자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예수 혈통에 대한 자신의 주장의 진실성이 독자들에게 유포되기를 바라고 있다. 뒤이어서 [성혈과 성배] (마이클 베이젠트,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 [앨라배스터석으로 만든 항아리를 이고 있는 여성] (마가렛 스타버드) , [복음서 안의 여신] (마가렛 스타버드) 그리고 [성당수도 기사단과 비밀결사] (리닌 피크넷과 클리브 프린스)과 같은 4개의 책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의 저자는 모두 역사학자가 아니었다. 스타버드는 비교 문학과 독일어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베이젠트는 심리학 전공의 대학생 이었으며 최근까지 신부주의와 종교 체험을 전공으로 석사공부를 했다. 그리고 레이는 원래 단편 소설가이자 저술가였다.” 링컨은 BBC 텔레비전 명사이자 대본작가이다. 그리고 피크넷과 프린스는 비학, 초자연주의, UFO에 심취해 있는 실제 음모 이론가들이다.

 

 

 

메로빙거 왕조에 대하여

 

67~68page

 

그리스도의 후손들은 5세기에, 메로빙거 왕조라고 알려진 혈통을 만든 프랑스 왕가와 결혼해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기 전까지 프랑스에 숨어 살면서 차츰 성장했다 .메로빙거 왕조는 파리를 세웠다.” (다빈치 코드 2 33페이지)

 

진실: 파리는 B.C. 250년부터 B.C.200년까지 그 곳에 정착한 켈트 사람, 골 사람(Gauls, 현재의 북부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를 포함하는 유럽 서부의 고대명), 특히 파리시족(Parisii)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도시는 B.C. 52년 줄리어스 시저가 정복한 이후, 로마 제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메로빙거 왕조는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수백년 후, 서부 게르만족과 연합해 그 지역을 탈취한 프랑크족 시대에 이르러 그 모습을 처음 드러낸다. 이 종족은 A.D. 200년부터 250년 사이에 벨기에족(Belgic, Gaul 북부에 살았던 고대 벨기에족)의 갈리아 지역으로 이주해 클로비스 1(481~511)의 통치를 받다가 약 486년에 이르러 현재 프랑스라고 불리는 지역의 통치권을 갖게 되었다.

 

메로빙거 왕조의 혈통이 시작된 시기는 프랑크족이 파리 지역에 들어오기 전인, 447년에서 457까지 통치했던 메로비치 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손자, 클로비스 1세 때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파리가 수도로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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