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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과학 사이의 논쟁]

 

케플러에 대한 오해

 

 

 

책 제목: 과학의 영혼

 

100page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는 처음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따른 중요한 천문학자였다. 케플러 또한 피타고라스 철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의 첫 번째 중요한 저서는 행성의 운행체계가 일련의 3차원적인 기하학적 공식들에 의해 묘사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였다. 비록 나중에 이런 시도를 포기해야 했지만, 이는 숫자와 기하학이 우주의 비밀을 풀어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피타고라스적 신념을 케플러가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 주었다.

 

 

 

커니는 케플러가 신적으로 영감을 받은 기하학을 기초로 신이 우주를 창조하였다.”는 사실을 믿었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수학의 정확한 묘사에 대한 그의 열정적인 신뢰는 케플러로 하여금 여러 차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행성의 궤도가 타원형의 궤도라는 사실을 밝혀내도록 만들었다.

 

 

 

코페르니쿠스처럼 케플러도 부분적으로 태양중심적 천문학에 매료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태양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는 태양을 신이 세상을 현존하는 사실을 상징하는 물리적 위치로 생각하였다.

 

그는 태양만이 가장 고귀한 신에 어울리는 것으로, 신은 이를 자신의 물질적 거처로 삼고 기뻐하며 천사와 함께 거한다. 단지 태양만이 그 위용과 능력에 근거해 그 주어진 목적과 의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하며 신의 거처라고 불리기에 합당하다.” 고 보았다.

 

 

 

 

길버트(Gilbert)의 자기학(magnetism)에 관한 저술들에 영향을 받은 케플러는 지구를 거대한 자기장(magnetic field)으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기력(magnetic attraction)의 개념을 행성체계 전체에 적용했는데, 이를 통해 태양을 거대한 중심 자석(great central magnet)으로 보았다.

 

이는 후대에 뉴턴이 주장한 중력을 미리 내다보는 것이었다. 물리학자 제럴드 홀튼(Gerald Holton)은 케플러의 체계에서 태양은 3가지 역할을 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태양은 행성들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수학적 중심부이다.

 

둘째, 태양은 행성들을 그들의 궤도 내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힘이 작용하는 물리적 중심부이다.

 

셋째, 태양은 신의 신전 역할을 담당하는 형이상학적 중심부이다. 홀턴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 3가지 역할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케플러의 과학적 업적은 그의 형이상학적이며 종교적 입장들과 분리된 채로 이해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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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과학 사이의 논쟁들]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대한 오해

  1. 책 제목: 과학의 영혼

  2. 저자: 낸시 피어시&찰스 택스턴

    52page~54page

길거리의 평범한 사람에게 기독교가 근대과학의 등장에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한다면, 아마 당신은 그에게서 놀라움과 불신의 반응을 보게 될 것이다.

 

이처럼 종교에 대한 새로운 인정은 아직 학교로부터 대중문화나 교회 속으로 스며들어가지 못했다. 그리스도인 친구들에게 과학에 대한 기독교의 공헌에 대하여 내가 책을 집필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이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은 회의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회의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통된 오해들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종교적인 논쟁들은 교회가 과학을 반대한다고 말하며 자주 사실을 과장해 왔다. 특히 앤드류 딕슨 화이트(Andrew Dickson White)개신교 교회의 모든 교단들, 즉 루터란, 칼빈주의자, 성공회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반성경적이라고 매도하는데 경쟁적이었다.”는 전면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사실은 루터가 [탁상담화](Table Talk)에서, 그리고 칼빈이 행한 설교에서 여기 저기 언급하였던 사실을 제외하고는, 종교 개혁자들은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논쟁 자체를 무시하였다. 더군다나 이러한 언급들의 진위여부마저도 역사적으로 의심스러운 것이 많다. 루터의 경우, [탁상담화]는 이 담화의 참여자들의 기억에 의해 그 담화가 있은 뒤 몇 년 후에야 기록되었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루터가 실제로 코페르니쿠스를 얕잡아 보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한다.

 

화이트는 칼빈의 경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칼빈은 시편93:1을 언급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반대하는데 앞장섰으며, “누가 감히 코페르니쿠스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 위에 올려놓겠는가?”라고 묻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칼빈이 그렇게 말한 적이 없으며, 발행된 그의 작품에서 어떤 식으로도 코페르니쿠스를 공격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코페르니쿠스*

 

진실은 신학자들이 코페르니쿠스주의에 답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현대 역사학자들은 흔히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인간의 가치에 대한 기독교적 견해에 치명타를 입혔던 것처럼 기술한다. 코페르니쿠스는 인류의 지위를 우주의 중심적 무대라는 고상한 위치에서 강등시켰다고 주장한다. 한 예로 역사학자 존 랜달(John Herman Rendall) [현대 지성의 성립](The Making of Modern Mind)이라는 책에서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인류를 우주의 목적이며 그 중심적 존재라는 교만한 위치에서 끌어내려 그를 끝없는 우주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작은 행성계의 자그마한 하나의 점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고 주장했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그리스도인들이 코페르니쿠스주의에 맞서서 자신들이 지닌 안정된 우주론이 무너지지 않도록 저항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문헌들은 이러한 묘사를 거의 지지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채택된 중세의 우주론이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세 우주론에서 우주의 중심이 곧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로 이는 악마의 장소였다.

 

우주의 중심에 지옥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다음에 지구, 그리고 천체의 순서로 점차적으로 더 고상한 행성들이 자리 잡았다.

 

 

 

사물에 대한 이런 착안을 통해 볼 때, 인류의 중심적 위치는 보완도 아니며 그렇다고 그 위치의 상실 또는 강등(demotion)도 아니었다. 사실 코페르니쿠스가 살던 시기에 그의 이론에 대한 일반적인 반대 주장은 그의 이론이 인류를 원래 위치보다 더 높이 올렸다는 것이었다.

 

중세 우주론에서 인간의 의미는 지구의 중심적 위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보여주시는 호의(regard)에 근거한 것이었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인간 가치에 대한 기독교의 가르침을 위협했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견해에 불과하다. 이 견해는 우리 시대의 고뇌(angst)를 역사 속으로 되돌려 읽고 있는 것이다

 

96page ~99page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1473~1543)의 작품들은 과학혁명의 초기 단계에서 의지할 수 있는 초석과도 같았다. 그의 태양중심설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메우스로부터 주어진 지구 중심적 천문학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렇다면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가? 기록에 의하면, 이는 어떤 실험적 자료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플라톤주의에 대한 헌신에서 비롯되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는 동안 코페르니쿠스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커니는 이러한 신플라톤주의와의 만남을 종교적 회심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했다. 신플라톤주의에서는 비물질적인 수학적 개념이 물질세계의 모든 것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플라톤 *

 

 

많은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신의 창조적 능력에 대한 가장 적절한 상징이 태양이라고 믿었는데, 이는 태양의 빛과 따스함이 모든 생명체들로 하여금 지구상에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플라톤주의는 태양신비주의(sun mysticism)와 관련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가르쳤지만, 신플라톤주의자들은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태양의 위치가 마땅히 신적 상징으로서의 위엄과 동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태양에 대한 이런 신비주의적 견해가 코페르니쿠스에게 과학적 사고의 문을 열어준 것처럼 보인다. 다음의 인용문에 나타난 그의 사상은 확실히 신플라톤주의적 태양신비주의의 흔적을 담고 있다

 

모든 자리의 한복판에 태양이 왕자에 자리한다. 가장 아름다운 이 신전에서 어떤 위치가 이 발광체로 하여금 이보다 더 훌륭히, 한꺼번에 모두에게 빛을 비출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 그가 등불로, 정신으로, 그리고 우주의 통치자로 불리는 것이 옳다. …. 이제 태양은 왕적 보좌에 앉아서 자기 주위를 맴도는 그의 자녀들인 행성들을 다스린다.

 

같은 인용문에서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을 가시적 신’(the Visible God)으로 지칭하는 문헌을 인용한다.

 

신플라톤주의가 실제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적 행성체계론에 박차를 가했는지 또는 이것이 그에게 과거의 지구 중심적 체계에 대항하여 자신의 새로운 체계를 지지할 수 있는 논증자료들(당장 사용할 만한)만을 제공했는지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확실히 알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이론에 대한 동시대의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데 있어서 신플라톤주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6세기 전반에 걸쳐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신플라톤주의자들 뿐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이에 대해 분명하면서도 실험적인 반대 주장을 내세웠다. 그들은 지구가 어둡고, 비활동적이며, 무겁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듯이) 움직이지 않는 질량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천상의 별들은 빛의 접촉점이므로 빛과 불로 구성된 물체들이 그 주된 요소들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일상생활의 관찰에 대항해 지구가 실제로 별들과 같은 천상체로서 태양주의를 궤도를 따라 회전한다는 주장은 분명히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 밖에 없었다.

 

 

 

태양 중심론(heliocentric theory)은 상식에 근거한 또 다른 반대에 직면했다.

 

예를 들어 태양 중심론이 맞다면, 공중에 던져진 물체가 지구로 다시 떨어질 때는 처음 던져진 곳과 약간이라도 다른 곳에 착륙해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 물체가 공중에 머무르는 동안 지구가 회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론은 신기하게도 유효한 이론이었다.

 

지구의 회전은 코리올리스 효과(Coriolis forces)를 가져오는데, 이는 푸코의 진자(Foucault pendulum)에 의하여 증명될 수 있다. 덴마크의 저명한 천문학자 타이코 브라헤(Tycho Brahe)는 대포알이 지구의 회전방향과 동일한 방향으로 쏘아 올려질 경우, 이 대포알은 더 멀리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했다.(지구의 움직임에서 비롯되는 운동량만큼의 힘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속도가 더해진다.). 또 다른 유효한 주장에 대해서도,, 갈릴레오가 초기 형태의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 해답이 주어지지 않았다. (8장을 참고할 것).

 

또한 반대자들은 만약 지구가 궤도를 따라 태양 주위를 회전한다면, 하늘에 박힌 별들도 그 궤도의 반대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 위치가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 또한 유효한 주장이었지만, 그 차이가 너무 작아서 1838년까지는 관측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주의에 대한 반대는 이처럼 수량적이며 논리적이었는데 반해, 당시 코페르니쿠스주의를 위한 실증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역사학자 홀(A. R. Hall)코페르니쿠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천상에 대한 사실적인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올바르게 지적했다. 사실, 태양중심설을 지지하는 주장들은 사실적이라기보다는 모두 철학적이었다. 커니는 신플라톤주의적 가정(assumption)에 대해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은 공리적이다. 왜냐하면 이 주장은 그 자체로 적절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는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적 가정을 근거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주장은 또한 동일한 이유로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에 불과했다.”

 

이런 주장들을 넘어 코페르니쿠스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주장은 자신의 체계가 수학적으로 더 간단하다는 것 뿐이었다. 이는 행성의 궤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주전원(epicycle)의 수를 80에서 34로 줄일 수 있었다. 이는 괄목할 만한 성취는 아니었지만, 수학이 자연의 진리에 대한 열쇠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 피타고라스의 추종자들을 비롯한 신플라톤주의자들에게는 호소력 있는 주장이었다.

 

 

실증주의자들의 역사 해석은 모든 과학적 진보를 종교와 신비주의를 극복한 합리성의 승리로 파악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종교와 신비주의는 분명히 코페르니쿠스의 편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천문학 이론을 신플라톤주의의 신비적 교리와 연관시키는 것에 대하여 혐오감을 느끼지 않았고, 그의 많은 추종자들 역시 이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했다.(2장의 조르다노 부르노의 견해를 참고할 것)

 

더군다나 태양중심설에 대한 반대는 단지 교리와 반계몽주의(obscurantism)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이유는 당시 지배적인 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였는데, 코페르니쿠스가 신플라톤주의적 철학에 근거한 이론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백년 후 갈릴레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태양중심설은 신플라톤주의 전통 바깥에 머물렀던 과학자들에 의해 부인되었고, 뉴턴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태양중심설을 위한 물리적 구조론은 형성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논쟁은 전적으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범주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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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진리]로 칼빈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의 절정을 맛보여 준 낸시 피어시의 신작 [세이빙 다빈치] 는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다. 미학과 철학 신학 과학을 넘나드는 이 책의 거대한 이야기는 읽는 이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야를 굉장히 넓혀준다. 책을 읽고 나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공유한다. (참고로 낸시 피어시의 저서들은 인용구 등을 사용할 때 철저히 출처를 밝혀두기 때문에 출처에 대한 의심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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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감각자료]


모든 세계관은 일말의 진리를 담고 있다. 경험주의에 담긴 진리는 창조주가 그분의 창조세계에 우리가 접근할 수 있도록 우리의 오감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복음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경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사도요한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메시지가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요일1:1,새번역] 이라고 주장한다.


바울은 로마의 통치자들에게 말할 때, 예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은 "어느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행26:26, 새번역] 지적했다. 그 일은 공적인 사건이었고, 그 일을 목격한 많은 증인들이 당시에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러므로 증인들이 반대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면 사도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복음서는 목격자들의 증언에 근거하고 반대신문과 검증이 가능한 공적 진리의 기록이라고 주장한다. 경험적 자료를 존중하는 복음서의 입장에 힘입어 학자들은 신약 성경 속 사건들의 역사적 증거를 탐구하는 경험주의 형식의 변증론을 개발했다.


이러한 변증 방식은 1700년대 Nathaniel Ladner의 [복음 역사의 신빙성] 에서도 볼 수 있고, 게리 하버마스(Gary Habermas)의 [역사적 예수]와 N.T 라이트의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같은 책에 드러난 최신 연구 성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립적인 관점에서 입증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세계관이 걸린 문제다.


그렇지만 신약 성경 속 사건들에 대한 세속주의적 해석에 대해 역사에 근거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가능하고, 그 과정에서 그러한 해석의 출발점이 되는 세속주의 세계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 또한 가능하다.


경험적 방법론을 내세우는 현대 과학도 성경적 세계관에 큰 빚을 지고 있다.


기독교가 등장하기 전, 그리스인들은 주로 논리의 관점에서 과학을 정의했다.


그리스 고전철학은 사물이 질료와 형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고, 과학은 형상에 대한 지식이라고 정의했다. 형상은 수처럼 이성적이고 영원한 것이므로, 과학은 수학처럼 논리적으로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다. 과학의 진리는 경험적으로 발견한 내용이 아니라 엄격하게 논리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과학을 이런 식으로 정의하게 되면 애초부터 경험적 조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따라온다는 문제가 있다.


어떤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기만 하면 될 뿐, 그것을 직접 살펴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추론만으로 대상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모두 끌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냄비를 살펴보자.


냄비의 목적이 액체를 끓이는 것임을 알게 되면, 그것이 액체를 담을 수 있는 특정한 형태를 가져야 하고, 가열할 때 타거나 녹지 않도록 금속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 등을 연역할 수 있다.


이런 연역적 방법은 모든 지식의 본이 되었고, 그 결과로 고전 사상가들은 구체적인 실험과 관찰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독교 신학자들은 몇 세기에 걸쳐 성경 본문을 숙고하는 과정에서 그리스식 과학의 정의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중세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전능하시니 세상을 수많은 다른 방식으로 만드실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분은 우주를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창조하실 수 있었다.


자연의 질서정연한 패턴은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것이 과학을 향해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 상아탑에 앉아 어떤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고 연역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신 우리는 세상으로 나아가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고, 하나님이 실제로 어떤 질서를 창조하셨는지 알아내야 한다.


한마디로, 관찰하고 실험해야 한다. 17세기에 뉴턴의 친구 로저 코츠는 이런 식으로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자연이 "하나님의 완전히 자유로운 뜻"에서 생겨났고,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관찰과 실험으로"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썼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우주론에 따르면 모든 요소가 각기 '자연스러운' 위치를 찾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수사이자 수학자였던 마랭 메르센은 그런 식의 연역적 추론에 반기를 들었다.


역사가 존 헤들리 브룩은 이렇게 썼다.

 

 


 

"메르센이 볼 때 우주에 '필연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의 자연스러운 위치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분이 원하시는 곳에 두시며, 그곳이 어디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우리의 의무였다."


이것으로 볼 때 현대 과학의 실험적 방법도 성경의 창조주 개념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 과학 초기의 과학자들은 "연역에 근거한, 논리적으로 확실한 지식"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관을 거부했다.


대신에 그들은 경험적 증거에 근거한 개연성 있는 지식이라는 과학의 새로운 정의를 받아들였다.


철학자 리처드 팝킨이 지적한 대로, 신학자들은 "서구 사상에서 너무나 큰 역할을 감당한 영국 경험주의"가 탄생하는데 과학자와 철학자 못지않게 중요한 몫을 했다.


-낸시 피어시 [Saving Davinci] 210~213page] -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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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피어시의 [완전한 진리]에 나온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낸시 피어시의 '칼빈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이 지닌 장점과 단점들이 분명히 있으며 피어시가 지지하는 '지적설계'는 고민해 볼 만한 매력적인 방향성이나, 기독교 신학에서는 비판할 여지가 있는 가설입니다. 어찌 되었든 '무신론적 진화론'이 교조주의적인 색채를 띄게 되면서 관련 학문들도 상당히 극단적인 주장을 하고 있고 이와 같은 개념이 전반적인 사회, 학문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피어시의 견해에 동의를 하든, 하질 않든 이 책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는 기독교인이라면 한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리처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 와 함께 읽으면 방향성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신록적 진화론이 일반 사회에 미친 영향력>

자연주의적 진화를 과학 수업에서 가르치면-> 윤리와 종교에 대한 자연주의적 견해로 이어짐-> 역사 , 사회 , 가정 등의 모든 교과 가정으로 번져 나감.

 

과학에 대한 자연주의적 정의->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주입시킴.

 

보편적 다윈주의 시대 의 도래(과학적 이론의 영역에서 포괄적인 세계관으로 변모한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점

이것저것을 조금씩 보는 경향이 있다. (프란시스 쉐퍼 왈)

è  가정 붕괴 , 학교 폭력 , 비도덕적 오락, 낙태 , 생명 윤리 등의 개별적 이슈에만 관심을 가지고 큰 그림을 못 봄.

è  세계관의 전환이 주된 원인.(궁극적 실재-> 비인격적 물질 , 에너지, 비인격적 우연) 

è  지적설계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그는 모든 것이 기원에 대한 견해에 달려 있음을 통찰.

 

 

진화 심리학(사회 생물학의 최신판)

è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다윈주의를 사회적 , 문화적 이슈에 적용)

è  전제: 자연 선택이 인간의 몸을 산출했다면 그것이 인간의 믿음 및 행위의 모든 측면도 설명해야 한다는 것

è  새로운 책들은 무진장 쏟아지는 실정

 

<Theme: 도덕>

ex1) [도덕적 동물] , [도덕의 진화론적 기원](Evolutionary Origins of Morality)

è  책의 요점: 우리의 친절 , 이타주의는 모두 우리의 생존을 돕고 , 더 많은 자손을 생산하는데 유익하기 때문이다. (도덕은 자연선택의 산물)

è  윤리란 , 우리의 유전자가 우리를 교묘하게 속여서 서로 협력하게 만든 하나의 환상이다.

è  우리가 선한 이유: 자연선택 때문이다.

 

Ex2) [마귀 같은 남성: 인간 폭력성의 근원을 찾아서](Demonic Males : Apes and the Origins of Human Violence)

è  우리가 악한 이유: 자연선택 때문이다.

è  성경 속의 원죄를 겨냥함.

è  9.11 사태도 도덕적 악과 상관 없다라고 주장(폭력의 성향이 DNA 에 쓰여져 있었을 뿐)

 

<Theme: 종교>


ex1) [우리는 신들을 믿는다.](In God We Trust) , [종교 해설: 종교사상의 진화론적 기원](Religion Explained : The Evolutionary Origins of Religious Tgought)

è  신경 체계가 복잡한 수준까지 진화했을 때 , 뇌가 빠지기 쉬운 불량상태가 바로 종교 에 대한 겨념이다.

 

<Theme: 정치>

ex1) [다윈주의 정치학: 자유의 진화론적 기원](Darwinian Politics: The Evolutionary Origin of Freedom)

 

<Theme: 경제학>

ex1)[진화론적 과학으로서의 경제학](Economics as an Evolutionary Science)

 

<Theme: >

ex1) [진화론적 법리학 또는 법 , 생물학 , 문화: 법의 진화](Evolutionary Jurisprudence or Law , Biology and Culture : The Evolution of Law)

 

<Theme: 교육>

ex1) [천재의 기원: 창의성에 대한 다윈주의의 관점](Origin of Genius : Darwinian Perspectives on Creativity)

è  지성(intelligence): 다양한 아이디어를 일단 창출한 다음 가장 적절한 것[적자] 만 선택되는 과정으로 정의함.

 

Ex2) [진화와 문학이론] (Evolution and Literary Theory)

è  영어 교사를 구체적으로 겨냥한 책

 

<Theme: 의료 분야>


ex1) [
진화 의학] (Evolutionary Medicine) , [우리는 왜 병에 걸리는가: 다윈주의 의학이라는 새로운 과학](Why we get sick: The New Science of Darwinian Medicine)

 

ex2) [다윈주의 정신의학](Darwinian Psychiatry),[심리치료실의 유전자: 진화심리학 탐구](Genes on the Couch : Explorations in Evolutionary Psychology)

è  심리 치료사를 위한 책

 

<Theme: 여성>


 ex1) [
나뉘어진 노동: 근로여성에 대한 진화론의 견해](Divided Labours: An Evolutionary View of Women at Work)

 

<Theme: 부모의 사랑>

ex1) [신데렐라에 관한 진실: 부모의 사랑에 관한 다윈주의의 견해](The Truth About Cinderella: A Darwinian View of Parental Love)

 

<Theme: 경영>

ex1) [최고 경영인의 본능: 정보화 시대에 인간 동물 관리하기](Executive Instinct : Managing the Human Animal in the Information Age)

 

<도발적인 주제들>

ex1) [욕망의 진화: 인간의 짝짓기 전략](The Evolution of Desire: Strategies of Human Mating)

 

ex2) [아담과 하와: 인간의 성의 진화](Adam and Eve: The Evolution of Human Sexuality)

 

ex3) [메이팅 마인드: 섹스는 어떻게 인간 본성을 만들었는가?](The Mating Mind: How Sexual Choice Shaped the Evolution of Human Nature)

è  이 책의 저자인 제프리 밀러는 PBS 방송의 진화 시리즈에서 예술적 표현마저도 일종의 성적인 과시로 시작되었다는 설명을 내 뱉음.

 

 

 

<Theme: 9.11 사태>

è  진화 심리학자들은 현실세계에 자신들의 이론을 적용할 기회를 얻음.

è  [뉴욕 타임즈] 의 과학담당 부서까지 동원됨.

è  기사 왈:1. 구조대원들의 영웅심리가 진화의 산물이다

     2.이타적 행위: 친족 선택의 산물!!(자신의 유전자가 친자식 뿐 아니라, 가까        운 친적에게도 전해짐을 염두함)-> 이타적 행위의 목적: 자신의 자손을 퍼트릴 기  회 증진

1) 게임이론에 기초한 이타적 행위 분석 -> 협조전략(맞대응하기) 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게 하는 최상의 방법이기 때문에 이타적 행위를 한다라고 주장.

(여기서 계속 말하고 있는 이타주의는 일반적인 의미의 이타주의는 아니다. 이것들은 단지 자기이익의 확장된 형태일 뿐이다.)

 

<기독교인의 입장>

è  참된 이타주의야 말로 기독교에 대한 강력한 변증 제공!

è  9.11 사태 등에서 보여준 영웅적인 자기 희생: 인간의 본성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도덕적 존재) 로만 설명 가능

 

<진화 심리학의 문제점>

-> 유전학이나 신경학에 근거한 실제적 자료의 부재

è  추측만 무성함.

è  다윈적 근본주의라는 비판까지 들음(다윈주의 자체가 경직된 정통교리가 되었음을 함축하는 도발적인 문구다)

 

솔직한 답변: 유전학자 알렌 오르 왈-> 참으로 난처한 사실은 인간 안에 있는 도덕이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된 것인지 , 진화된 것이 아닌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조금도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단 진화론적 전제를 받아들인 후에는 증거의 여부가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다윈주의적 설명을 인간 행위에 적용하는 것은 그저 논리의 문제에 속한다.)

 

<Theme: 강간>

ex1) [강간의 자연사: 성적 강제 행위의 생물학적 기초](The Natural History of Rape: Biological Bases of Sexual Coercion)

è  강간: 생식의 성공을 극대화하려는 진화론적 적응 현상.

 

다윈주의자의 단순한 논리: 어떤 행위든지 오늘까지 살아남은 것은 진화론적 이점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Theme: 유아살해>

스티븐 핑거 왈: 신생아가 병들었거나 그 생존이 불확실한 경우에는 손실을 감수하고 가장 건강한 놈들을 선호하거나 나중에 다시 시도할 수 있다. 고 말함.

 

문제점: 1) 신생아 살해가 진화에 의해 선택된 것이라는 증거는커녕 유전적 특질이라는 증거도 없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 하는 쌍둥이 연구와 염색체의 위치와 DNA 순서는 어디에 있는가?)

(결국 우리가 지닌 건 어떠한 증거도 아니고 ,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궁극적인 진화심리학의 약점: 너무나 신축성이 뛰어나서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유아살해를 자신들의 논지로 설명해 내는데 , 그렇다면 왜 대다수의 어머니가 자기 아기를 죽이지 않는지를 물어보면 그것도 진화가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현상과 더불어 그 반대되는 현상도 설명하는 이론은 사실상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셈이다.)

 

<결국 성경의 메시지와의 대립이다>

*요즘은 진화론자들이 나서서 진화론이 도덕의 기초를 무너뜨린다고 선언하고 있다.

 

<Theme: 도덕(ex)동물과 성관계)>

다윈의 혁명에 담긴 완전한 함의를 끌어내다 보면 동물과의 성관계도 지지하는 말이 나올 수 있다. (프리스턴 대학의 피터 싱어가 주장했었다.)

<동물과 인간을 발달 단계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니, 이럴 수 밖에 없다.>

 

ex1) 2002년 브로드 웨이에서 염소, 또는 누가 실비아인가?(The God , or , Who Is Silvia?)라는 공연이 있었음. (수간이라는 주제가 일반 대중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함)

 

문화: 지배적인 세계관에 따른 논리적 결과를 표현하게끔 되어 있다.

 

Ex2) 몇 년 전 빌보드차트 상위 200곡 중 17위로 뛰어오른 블러드하운드 갱의 노래

è  얘야, 너와 나는 단지 포유동물일 뿐이야. 그러니 디스커버리 채널의 걔네들처럼 우리도 하자. (원숭이처럼 옷을 입고 괴상한 섹스 자세 취함)

è  이 책의 저자의 친구가 8살 정도 되는 소년 두명이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 듣게 됨.

 

 

 

<다윈화 되는 문화>
과거: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이 진화의 함의를 제한하고자 생물학과 문화 사이에 담을 쌓아 올렸다. ( , 진화가 인간의 몸을 창조했으나 그 후 인간이 문화를 창조했고 , 문화는 생물학에서 독립된 것이라고 그들은 말함)

è  생물학적 결정론이 이 방파제에 막혔었는데 , 요즘 진화 심리학 때문에 벽이 무너지고 있다.

 

사회적 다윈주의(사회 생물학)=> 적자생존의 개념을 통하여 무자비한 자기이익의 추구를 부추겨옴.

è  이게 하나의 분파인 진화심리학을 만들어 냈고 , 이 영역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짐.

다윈주의의 전제를 수용하면: 일관성을 유지하라는 압력을 받게 되며 문화의 전 영역에 적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Theme : 문화>
ex1) [
문화의 진화](The Evolution of Culture)

ex2) [문화의 다윈화 현상](Darwinizing Culture)

 

보편적 다윈주의vs보편적 설계

 

<모순 덩어리 진화 심리학>


진화 심리학이 뜨는 이유: 자신들이 종교의 신화가 아니라 과학의 탄탄한 기반에 바탕을 둔 도덕을 제공한다고 약속하기 때문이다.

 

모순점: 만일 우리의 생각이 모두 진화의 산물이라면 , 진화심리학이란 생각 자체도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의 정신이 만든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 그것도 진리가 아니라 생존하는 데 유용할 따름이다.

(다윈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진화론만은 옳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말을 따르면 , 객관적 진리란 존재할 수 없다.)

 

ex) (영어로) 나는 영어를 할 줄 모른다고 말하는 것.

Ex2) 도덕적 절대명제가 절대 없다고 주장하는 것

Ex3) 내 동생이 우리 부모님의 유일한 자식이다 라고 말하는 것

 

 

<그들의 문제점2>

이론을 평가할 때 , 실제적인 시험을 해 봐서 우리가 그 이론에 기대어 살 수 있는지 그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인간 본성에 걸맞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다.

è  다윈주의 진리 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의문시한다. 모든 진리 주장은 다윈주의의 빛에 비추어 보면 적나라한 권력 투쟁이다-> 냉소주의 야기

è  도킨스 등도 자신의 저서에 모순된 글들을 많이 나겨둠.(수사학적 스킬 발휘)

è  결국 진화 심리학에 기대어 살 기가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è  수 많은 진화 심리학 지지론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포명할 때 , 도덕적 자유 , 개인의 결정권 등을 예외적으로 합리화시키는 현상은 , 결국 그들이 무엇을 믿든지 간에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도약을 시도)

 

기독교 신앙

1) 더 일관성 있고 , 모순적이지 않은 합리적인 것이다.

2) 현실세계에도 잘 부합한다.

 

신앙의 도약을 하는 모습: 자신의 세계관은 이쪽 방향을 가리키는데 실제적인 경험이 다른 방향을 가리킬 경우, 자기가 공언한 세계관에 기초해서 일관성 있게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계관의 충돌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서 과학자들에게 판결을 맡길 수 없다.

 

만일 다윈주의가 옳다면, 종교와 도덕은 사실 의 영역이 아니라 가치의 영역에 속한 상층부의 비합리적 신념에 불과한 셈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가 객관적 진리라는 주장을 포기하면, 그들의 신념이 비판을 면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허락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거래가 보장하는 안전은 거짓이다. 왜냐하면 자연주의적 진화라는 지적 제국주의가 너무 거대해서 가치의 영역마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도킨스는 종교를 정신의 바이러스로 비난하면서,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정신을 침범하는 악성 감염 이라고 했다. 사실의 영역이 계속해서 가치의 영역을 포위해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의 목적>
거룩함과 완전함이라는 영적 이상을 따름으로써 하나님 및 동료 피조물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우리가 지닌 도덕은 목적론적이다.)

 

EX) 회의주의자 협회의 회장이자 [Skeptics] 잡지의 발행인인 마이클 셔머도 과거에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인데 , 진화론을 배우면서부터 탈회심을 하였고 , 그 뒤에 이러한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었다.(직접 고백한 말이다)

 

EX2) 사회 생물학의 창시자인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 윌슨도 하나님을 참 잘 믿었던 사람이었는데,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나서 , 진화가 지닌 함의를 모든 것에 관련 지어볼 수 밖에 없게 되었단다. (직접 고백한 말이다.)

 

젊은이들이 대학에 가려고 집을 떠나기 전에 그들에게 기독교가 종교적 진리일 뿐 아니라 모든 실재에 관한 진리임을 가르쳐서 미리 준비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기독교는 총체적 진리이다.

 

è  우리가 자녀들에게 그 정도의 확신을 심어 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세속세계에서 직면할 인지적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진화심리학자-> 다윈주의를 눈앞에서 노골적으로 적용하는 그야말로 진화의 기동타격대라고 할 수 있다.

 

 

<철학적 다윈주의>

EX1) 스탈린-> 러시아 정교회의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그가,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가 다윈의 책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그 뒤에 그는 무신론자가 되어 공식적인 무신론 국가를 만들기 위해 자기 국민을 문자 그대로 수백만이나 살해했다.

 

19세기 말, 다윈주의가 대서양을 넘어 미국 연안에 도착할 때 , 새로운 학파가 이것을 수용했는데 그들은 바로 철학적 실용주의자들이었다.

è  핵심 가정: 만일 생명이 진화한 것이라면 인간의 정신도 진화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모든 인문과학-심리학. 교육학. 법학. 신학-이 거기에 기초해서 다시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è  미국의 유일한 자생적 철학

 

 

 

철학적 실용주의자들의 주장들

è  여러 문명을 이룩한 위대한 원리들은 초월적 진리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사상들 가운데 생존경쟁에서 이긴 것들이다. 라고 주장함.

è  정신은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답한다.

è  전통적 유신론과 자유주의적 유신론을 모두 배격한다.

è  다윈주의를 정신에 적용하려는 진화 심리학자의 영향을 많이 받음.

è  영혼의 과학이던 심리학 분야가 행동주의로 옮겨가기 시작함.

è  어떤 생각이 보상을 제공할 경우, 우리는 그것을 진리라고 부른다고 주장.

è  신념은 일종의 예측-내기 도는 도박- 이라고 주장하기도 함.

è  제임스 왈, 우리의 사고방식에서 참된 것 이란 곧 편리한 것이다. 이는 우리의 행동양식에서 옳은 것 이 편리한 것을 뜻하는 것과 같다.

 

 

<기독교의 주장>

우리의 인지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우리는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실용주의에 있는 일말의 진리>

è  어떤 신념체계가 참되다면 당연히 실제 세계에서 제대로 작동(실용적) 해야 한다.

 

BUT, 실용주의적 검증을 통과했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주장을 진리로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진리인 것은 실용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실용적이라고 해서 다 진리는 아니다?)

 

상층부를 차지하던 낭만주의와 하층부를 차지하던 경험주의 , 공리주의가 있었다면 이도 저도 아닌 실용주의가 이 둘을 통합시켜 버렸다. 그러나 말이 통합이지 다윈의 진화를 하층부에 집어 넣자, 생각은 생존 가치에만 의거해 선택된 정신적 돌연변이로 축소되어 버렸다. 한 마디로 실용주의는 이 두 층을 결합한 게 아니라 자연주의의 그물을 상층부에 던져 그것을 하층부로 끌어내렸고, 그 결과 상층부에는 포스트모던적 비합리주의회의주의만 남게 되었다.

 

<미국을 변화시킨 사상>

<Theme: 신학>

찰스 샌더스 퍼스가 실용주의자 가운데 이 영역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함.

è  범심론을 수용함(우주에 있는 모든 것이 정신이나 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상)

è  과정 신학으로 이 관점이 들어옴.(굉장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è  과정 신학: 하나님과 세계과 끊임없는 변화와 진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가르침.

è  과정 신학은 엄밀하게 범신론(모든 것이 하나님) 이 아니라 범재신론(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상) 이다.

è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창조하는 공동 창조자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창조하는 공동 창조자이기도 하다.

è  죽음 이후의 내세란 없다.

è  전통적 유신론에서 완전 벗어남.

è  전지하지도 않고, 전능하지도 않으며 오직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이 세계와 함께 진화하는 존재일 뿐이다.

è  이 논지가 일부 복음주의 진영에 흘러가서 열린 유신론을 만들어 냄.

è  이 단어 자체가 실용주의자의 언어를 반영한 거다. (열린 우주를 주장함, 이 세계는 하나님조차 미리 알 수 없는 세계다.)

è  진화론적 신학을 가르치게 되는 교회와 신학교를 우리는 막아야 한다.

 

 

 

<Theme: 법학>

철학적 실용주의를 법에 적용하여 하나의 운동을 일으킴: 법적 실용주의 탄생

è  올리버 웬델 홈즈 2세가 20세기 법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침

è  (독일의 관념론에서 나온) 역사주의 법학파+(영국의 경험주의에서 나온)분석주의 법학파를 함께 엮음.

è  역사주의 학파쪽 의견: 법의 근원이 진화 중에 있는 관습에 불과하다는 생각 도입

è  분석주의 학파쪽 의견: 법의 평가기준이 사회과학에 의해 측정된 사회적 호용이라는 생각 도입.

è  판사들이 법을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 법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은 많다. (ex) 로 대 웨이드 abortion decision)

è  , 법정이 판결을 내릴 때 법이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법정이 선호하는 사회적 결과에 근거해 판결했다는 것이다.(법적 실용주의의 유산들이다.)

 

<Theme: 교육>

존 듀이가 교육의 방법론 분야에서 20세기에 가장 큰 공헌을 함.

-> 기독교를 버리고 자연주의 철학을 채택함.

-> 이 교육철학이 적용되자, 선생은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촉진 시키는 역할을 할 뿐인데 , 학생들이 다양한 실용적 전략을 시도해서 자신에게 가장 효과가 있는 것을 발견하도록 지도할 뿐이다.

-> 모든 가치들은 균등한 것으로 취급해야 하며 학생들은 자기가 개인적으로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분명히 하면 된다. 교사는 어떤 면으로든 지도적 역할을 해서는 안되며, 오직 학생들이 스스로 대안들을 견주어 보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옆에서 코치 역할만 하라고 엄격히 지시 받는다.

-> 이러한 접근의 저변에 깔린 가정은 철학적 자연주의다. 윤리에 대한 자연주의적 접근은 어떤 초월적 표준도 인정하지 않는다.

-> 듀이는 주장하기를 우리가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분명히 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왜나하면 종교적, 도덕적 도그마가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지시하기 때문에 우리의 경험은 왜곡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을 분명히 하려면 이전의 도덕적 도그마에서 우리의 생각과 정서를 해방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 이러한 방식의 수업 예 ex) 가장 친한 친구를 살해하는 계획 세우기

-> 구성주의 교육으로도 응용되어지고 있다.

 

[구성주의 교육]

è  지식이 사회적 구성물이라면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에게 자기 나름의 지식을 구성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è  외부에 객관적 실재가 있어 배우는 자에게 알려진다고 보지 않고 , 오히려 배우는 자가 자기 나름의 실재를 능동적으로 구성한다고 가정한다.

è  듀이의 진화론적 인식론이 직접 적용된 결과다.

è  유명한 구성주의자 왈, 생물학자에게 있어 , 어떤 살아있는 유기체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한 그것은 유효한 것이다. 구성주의자에게 있어, 어떤 개념과 모델과 이론 등은 그것들이 창안된 맥락에서 적합하다고 판명된다면 그것들은 유효한 것이다.

 

<문제점 지적>

è  만일 지식이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한다면, 같은 논리가 기독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독교 역시 사회적 힘들의 산물일 뿐이 되는 것이다.

è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진리 주장을 사회적 구성물로 환원해 버리는 급진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을 포용하게 되는 셈이다.

 

<미국의 철학자 로티>

è  그가 보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핵심: 진리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이다.

è  우주의 광선이 DNA 분자 속에 있는 원자들을 뒤섞어 돌연변이를 만드는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나 바울이나 뉴턴의 위대한 작업도 우주의 광선이 그들 뇌 속에 있는 중요한 중성자들의 정교한 구조를 뒤섞은 결과 생긴 것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è  객관성이란 개념을 배격하면서도 역설적으로 한 가지 생각만은 틀림없는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바로 다윈주의 (정신이 다윈의 진화의 산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공격>
만일 그들에게 일관성이 있다면 자연주의적 전제를 견지하는 이들은 과학과 도덕을 비롯한 다른 모든 분야의 지식에서 포스트모던적 회의주의를 품는 것으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포스트모던적 회의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자신의 전제에 따른 결과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실용주의는 실용성이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실용주의가 어떤 생각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 실용성 곧 그것이 사회적 욕구와 목표를 달성하는 지 여부다.)

 

<결론>
->
성경의 계시 교리가 사실과 가치, 상층부와 하층부 간의 간격을 메우는 유일한 길이다. 실용주의자들이 그 둘을 함께 묶어 보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다윈의 진화를 하층부에 배치하자, 생각은 생존 가치에만 의거해 선택된 정신적 돌연변이로 축소되고 말았다.

-> 우리의 신앙에 내포된 위대한 주장에 충실하려면, 기독교가 가치의 영역으로 밀려나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형이상학적 겁쟁이의 옷을 벗어 버리고 승리를 확신하면서 공세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 또한 기도와 영적 능력으로 무장하고 오늘날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을 보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리더십 아래 발벗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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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낸시 피어시

출판 복 있는 사람

발매 2015.03.16.

 

 

 

 

  이 책은 500page에 달하는 분량과 상당한 크기를 자랑한다.

 

  저자는 [완전한 진리]라는 명저를 남겨서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첫 느낌은 이 책은 '미쳤다!' 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수 있지? 라는 놀라움과 함께 프란시스 쉐퍼제자를 정말 잘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청출어람이라는 표현이 이에 적절하지 않을까?

 

  [완전한 진리]가 가져다 준 충격에 비견할 만한 충격...

 

  칼빈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의 끝판왕을 보는 듯한 책이다.

 

  컬러풀한 삽화들도 많이 들어 있는데, 기독교 세계관이 세속주의 세계관 속에서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특히 예술, 과학, 철학 등에 적용되는 기독교 세계관을 보고 있노라면, 교회를 다니면서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눈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리처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 같은 저서를 통해, 칼빈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이 지닌 한계와 문제점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정확히 이 노선을 지지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정말 잘 쓰여졌다.

 

  '문화' 라는 영역과 '종교'라는 영역이 거의 분리되어 버린 작금의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 속에서, 저자는 두 영역을 함께 쥐고, 세상과 소통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미술 작품 하나, 영화 하나, TV 프로그램 하나 속에도 깊은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기에 우리는 분별력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중심을 잘 지켜야 한다.

 

  조금은 숨이 막힐 수도 있지만, 이런 넓은 안목을 가지고 문화 생활을 접한다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더 많은 영역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박학다식한 저자의 지식에 일단 감탄하게 되고, 이 책을 다 보고 나면 이 책에서 비판적으로 회고해 볼 만한 내용은 없는지 고민도 해 보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 책을 통해 전적으로 배우는 입장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우리에겐 너무나 생소했던 기독교 세계관 지식 아니던가....

 

  여담이지만 그녀의 스승인 쉐퍼는 정치적으로는 보수를 지향했었다. 그러한 색채가 이 책에서도 조금씩 묻어 나는데, 기독교 세계관의 눈으로 볼 때 기존에 첨예한 논쟁이 되고 있던 분야들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는지를 한번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미국의 극우 집단인 존 버치 협회 소속이었다가 그 노선의 위험성을 깨닫고, 전향한 한 여성의 책을 보고 있는데 그 책에 따르면 쉐퍼는 극우 그룹에서 상당히 인정을 받았었다고 한다. 정치 영역을 포괄하면서 공부를 하다 보면,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된다. 어쨌든 쉐퍼는 한 시대를 풍미한 매력을 지닌 인물이긴 하다.)​

 

  좋은 내용이 많아서, 두고두고 공부해도 좋을 책이다.

 

  복음주의 지성에 대한 마음이 많다면 이 책은 한번 읽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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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낸시 피어시, 벤 위더링턴 3세, 크레이그 L. 블롬버그, 크레이그 A. 에반스, 개리 R. 하버마스 외

역자 박찬호

원제 Evidence for God

발행일 2016.07.13

 

 

 

  이 책은 상당히 알차다. 낸시 피어시를 위시하여 다양한 저자들이 한 챕터 씩 맡았는데, 기독교를 위한 '변증 활동'을 하는 기독교사, 복음주의 지성인들에겐 가뭄에 단비처럼 맛있는 책이 될 것이다.

 

  분량이 상당하지만 구성은 알차다.

 

  철학의 질문 챕터에서는 우주론적 논증, 도덕론적 논증 부터, 고통의 문제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한다.

 

  과학의 질문 챕터에서는 우주론 속의 하나님, 생명의 기원, 유물론적 다윈주의 비판, 지적설계 등 다양한 영역을 다룬다.

 

  예수에 대한 질문을 다루는 챕터에서는 예수의 실존성, 기적의 신뢰성, 예수의 부활, 삼위일체 등 궁금했던 영역들에 대한 나름의 답들이 제시되어 있다.

 

  마지막 성경에 대한 질문을 다루는 챕터에서는 성경의 원본 문제, 성경 무오성, 번역의 이슈, 정경, 도마복음, 유다복음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아무래도 방대한 주제들을 한 권의 책에 담다 보니, 각 장의 내용 하나 하나는 좀 아쉬울 수 있다.

 

  짤막짤막하게 전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이슈들을 한 권의 책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동전의 양면처럼 크나큰 장점이 되기도 한다.

 

  각각의 주제들은 책 한권을 차지해도 될 정도로 중요한 내용들이고, 다뤄야 할 내용이 많다. 그 영역의 핵심만 뽑아서 3~4장에 압축시켰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러한 궁금증 들에 대해서, 지난 반세기 이상의 역사는 침묵으로 일관하기 바빴다.

  그러나 복음주의 지성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요즘은 지적인 활동도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지적인 유희로만 그쳐 버린다면 이와 같은 책은 일말의 가치도 없는 휴지조각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실존하는 삶을 잘 영위하고, 이웃을 섬기는데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이 책의 가치는 상당하리라 생각해 본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나눠볼 만한 내용들은 다른 지면을 통해서 다루고자 한다.

  기독 변증학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1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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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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