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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경향신문 기자 -> 2007년 중앙일보 입사 논설위원 -> 현재 JTBC 로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듯 합니다~

 

[정의를 부탁해]의 저자 '권석천'의 여정이다.

 

그의 짤막하지만, 굵직한 사설들을 읽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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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열린책들)는 194X년 알제리 도시 오랑에서 벌어지는 전염병과의 전쟁을 그리고 있다.

 

4월 16일 죽은 쥐들이 쏟아져 나오고 불안감이 엄습하지만 시 당국은 '죽은 쥐 수거'만 지시한다. 방역소가 나서야 한다는 의사 리유의 요청에 방역소장은 이렇게 답한다.

 

 

"명령이 있어야 그렇게 하지." 메르시에가 말했다. .... 시 당국은 자진해서 무엇을 해볼 생각도 전혀 없었고 아무런 대책도 없었지만 논의를 위해 일단 회의부터 소집하기로 했다." (26쪽)

2015년 6월 대한민국, 메르스에 대한 저우의 초기 대응이 실패한 데 대해 세계보건기구(WHO) 합동평가단은 "투명한 정보 공개가 늦었기 때문" 이라고 지적한다. '카톡'소리를 타고 병원 명단과 메르스 확산 지도가 전파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왜 의미 없는 비공개 원칙에 집착한 것인가. 명령이 없었기 때문인가.

"조치들은 허술했고 여론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욕심에 상당 부분 포기한 것 같았다.... 실제로 우려할 만큼 충분히 규명되지는 않았으며, 따라서 시민들이 냉정을 잃지 않으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71쪽)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를 먹지 말라.' 예방수칙은 극소수 미식가를 위한 것이었다.

​병원, 시민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체계적인 방역 매뉴얼로 불안을 불식시켜야 할 골든타임에 정부는 괴담 대응 매뉴얼을 펴들었다.

 

관료들은 감염 확률이나 치사율 같은 통계수치들을 나열하며 '합리적 태도를 잃지 말라'고 훈계했다.

"이렇다 할 신념도 없이 공부 집행하듯 했었지요. 그들(관리들)에겐 상상력이 부족합니다. 재앙에 맞설 수준들이 아닙니다. 짜낸 해결책은 고작 코감기 수준에 불과해요." (161쪽)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책엔 '서민의 삶'이 빠져 있었다.

 

 

 

세종시와 충북 오송에서 일하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실무자들은 대도시 시민들의 생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고위관료들과 정치인들은 승용차 뒷자석 시트에 기대 정부 청사와 국회, 고급 식당 사이를 오갔다. 병원에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어쩔 수 없이 밀접 접촉하며 들숨 하나, 날숨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시민의 불안이나 분노 따위는 그들의 안중에 없었을 것이다.

 

고령, 중증 질환이 아니면 괜찮다는 투의 발표는 또 무엇인가. 고령자와 중증 질환자는 어찌돼도 할 수 없다는 뜻인가.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병균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머지 것들, 예를 들어 건강함, 성실함, 순수함 등은 이를테면 의지, 그러니까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의지의 산물이죠." (324쪽)

그렇다. 병균과 부패, 관료주의가 자연스러운 것이다. 경각심과 의지를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금세 그런 것들에 잠식되고 만다. 관료들이 위만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 정윤회 문건, 성완종 리스트를 거치며 스스로를 여론에서 '자가 격리'시켜 왔다.

 

그 결과 메르스는 궁궐 밖 먼 곳에서 풍문으로 떠돌았다. 권력 내부의 폐쇄주의가 사태를 더 곪아터지게 했다는 혐의를 벗기 힘든 상황이다.

 

"나는 성인들보다는 패배자들에게 더 많은 연대의식을 느낍니다. 나는 영우주의라든가 성스러움 따위에는 취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327쪽)

메르스가 폭로한 건 공감이 빠진 채 공회전하는 권력의 누아르다. 권력 운용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위험은 확대 재생산된다. 페스트가 변두리에서 시작됐듯 돈 없는 자, 힘없는 자들부터 희생될 것이다.

메르스는 대통령과 정부를 향한 경고다. [페스트]의 마지막은 암울한 묵시록에 가깝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도 않고 사라져 버리지도 않으며... 인간들에게 불행도 주고 교훈도 주려고 저 쥐들을 잠에서 깨워 어느 행복한 도시 안에다 내몰고 죽게 하는 날이 언젠가 다시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96쪽)

-[정의를 부탁해]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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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월 유신 ~ 6월 항쟁 : 직접적 언론통제와 종속적 유착관계

 

독재권력이 국민의 주권을 박탈한 시대였기 때문에 언론이 사회적 권력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정치권력은 언론시장 신규 진입을 봉쇄하고 취재와 보도의 자유를 제한했으며, 언론인에 대한 협박과 테러를 자행하고 보도와 편집에 직접 개입했다.

협조적인 언론사에 대해서는 이윤 추구의 기회를 열어주되 권력의 나팔수가 되기를 거부하는 언론사에 대해서는 경제적 기반을 공격했다.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 보도지침은 이 시기의 권언관계를 증언하는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종속적 유착관계는 전두환 정권의 몰락이 분명하게 예고되었던 6월 항쟁 전야에 가서야 비로소 동요의 조짐을 보였다.

 

 

2) 6월 항쟁~2001년 1월:선택적 상리공생과 제한적 대립

6월항쟁의 승리와 더불어 선거를 통하지 않고는 정권을 창출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독재시대의 종속적 권언유착은 종말을 고했다. 권언관계는 대등한 상리공생으로 발전한다. 양측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만큼 정치권력은 유력 언론사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자 했다.

김영삼 정부가 언론사 세무조사를 유야무야 처리한 것은, 정치권력이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독자적인 사회적 권력으로 언론이 성장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언론사는 자기의 입맛에 맞는 정치권력이 탄생하도록 적극적으로 국민의 의사 형성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적 상리공생은 안정성이 약하다.

다수 국민의 여론이 정치권력에 비판적일 경우 언론은 이윤과 사회적 권력의 확대를 위해 정치권력과 제한적 대립각을 연출한다.

'노태우 대통령 만들기'를 위한 양김 혐오증 유발(87년)과 노골적인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92년)를 했던 유력 언론사들이 이들의 집권 후반기에 가한 대정부 공격은 대등한 상리공생이 얼마나 불안정한가를 보여준다.

김대중 정부가 2000년도에 정기 세무조사를 하지 않는 등 집권 초기 3년 동안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했던 유력 언론사와의 대립을 회피한 것은 소수파 정권이라는 약점과 경제난 등 불리한 환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권세력으로서 선택적 상리 공생의 수혜자가 되려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3) 2001년 1월~현재: 선택적 상리공생의 일시적 붕괴

2001년 1월 김대중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 이후 상황은 1987년 이후 약 15년간 계속되어온 권력과 언론의 선택적 상리공생과 제한적 대립관계가 일시적으로 무너진 과도기다.

김대중 정부는 유력 신문사와의 상리공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합법적 수단인 세무조사를 통해 언론사의 물질적 토대와 사주들의 특권을 공격하고 신문고시를 부활시켜 신문시장의 불공정 경쟁행위를 규제하고 나섰다. 그러나 구속된 유력 신문사 사주들은 보석으로 풀려났다.

 

부활한 신문고시는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언론개혁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동력과 국민의 지지를 상실했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선택적 상리공생이 어떤 식으로 되살아날지 알 수 없다.​

 

-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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