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공포증'에 해당하는 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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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는 없지만 수 많은 specific phobia(특정 공포증) 중 한가지인

구토 공포증에 대해 살펴봅시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가다] 라는 '불안'에 대해 총망라 해 둔 좋은 저서에 나온 내용입니다. '불안'이라는 막연한 요소에서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파생될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책입니다. '구토 공포증'도 넓게 볼 때는 '불안'의 범주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불편감일 것입니다.

 

 

 

 

지하 화장실에서 R 간호사를 만났다.

이야기를 좀 나눈 뒤에 토근 시럽을 마셨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나니 불안감이 상당히 커지는 게 느껴졌다. 몸이 약간 떨렸다. 그렇지만 곧 욕지기가 몰려올 것이고 금세 끝마치고 나면 걱정한 만큼 끔찍한 경험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M 박사가 내 손가락에 심장 박동과 산소 농도를 체크하는 장치를 부착했다.

욕지기가 치밀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M 박사가 불안 수치를 1부터 10 사이의 수치로 말해달라고 했다.

"9쯤요."

이제 속이 약간 메슥거렸다. 갑자기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 변기로 달려갔다. 두 차례 헛구역질을 했지만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다렸다.

빨리 시작되어 얼른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손가락에 달린 감지기가 방해가 되는 것 같아 떼어버렸다.

잠시 뒤 다시 횡격막이 요동치며 헛구역질이 나왔다. R 간호사는 헛구역질을 몇 번 하고 나면 본 게임이 펼쳐진다고 했다.

나는 얼른 끝났으면 하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욕지기가 강한 파도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를 덮쳤다가는 다시 물러났다. 구토가 나올 것 같은데 요란한 헛구역질만 나오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몇 차례인가는 정말 배 속이 뒤집히는 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구역질을 해도....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무렵에는 시간 감각이 흐려져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구역질이 치밀 때마다 담이 비처럼 솟았고 욕지기가 지나고 나면 몸이 땀으로 축축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던 것 같고, ​내가 기절해서 구토를 하다 기도가 막혀 죽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자 R 간호사가 내 안색은 좋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간호사나 M 박사나 약간 걱정스러워 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불안감이 더 커졌다. 저 사람들이 걱정할 정도라면 정말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한편으로 나는 기절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러면 죽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대략 40분 정도 지나고 수차례 더 헛구역질을 하자 M 박사와 R 간호사가 토근 시럽을 좀 더 마시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또 먹으면 더 심한 욕지기가 더 오랫동안 몰려올까 무서웠다.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계속 헛구역질을 하라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얼른 게우고 고통을 끝내자는 생각이 토근 시럽을 이겨내고 구역질이 가라앉기를 바라는 쪽으로 바뀌었다.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했고 구역질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고 너무나 비참했다. 구역질 발작이 잠시 가라앉은 사이에는 덜덜 떨며 화장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긴 시간이 지났다.

R간호사와 M 박사가 계속 구토제를 더 먹으라고 설득했지만 나는 그저 구역질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한참 동안 구역질이 나지 않다가, 놀랍게도 느닷없이 ​격렬한 구역질​이 치솟았다. 속이 뒤집어지는 게 느껴져서 ​이번에는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2차 파동을 힘겹게 삼키고 나자 욕지기가 뚜렷이 가라앉았다. 그 순간 토하지 않고 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R 간호사는 화가 난 것 같았다.

"세상에, 이렇게 자제력이 강한 사람은 처음 봐요."

간호사가 말했다.(R 간호사는 내가 치료를 끝낼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아서 토하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것 아니냐고 짜증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M 박사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어쨌든 구토제를 먹지 않았느냐는 거다) 마침내 내가 토근 시럽을 삼킨지 몇 시간이 지난 뒤에 R 간호사는 토근 시럽을 먹고 토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노출 요법을 완성하자." 는 M 박사의 설득이 좀 더 이어지고 난 뒤에 결국 포기하고 "이번 시도를 마치기로" 했다.

여전히 속이 메슥거렸지만 그래도 좀 가라앉은 편이었다. 진료실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병원에서 나왔다.

 

차를 몰고 집으로 가는데 구토가 일어나 차 사고를 낼까 봐 극도로 불안했다. 붉은 신호등 앞에 서서 공포에 떨었다.

집에 도착해 침대로 들어가 몇 시간 동안 잤다.

​일어났을 때는 욕지기가 사라졌고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렇지만 그날 밤에는 병원 지하 화장실에서 구역질을 하는 악몽을 되풀이해서 꾸었다.

​다음 날 아침 회의가 있어서 억지로 출근을 했다. 그런데 공황이 찾아와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뒤 며칠 동안 불안감이 심해서 집 밖에 나가지 못했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에서 -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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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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