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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케플러는 행성궤도가 타원형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발견했을까?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행성이 원궤도로 돈다고 생각했다.

 

맨 처음 이 생각을 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하늘이 '완전'하고 원이 '완전한' 형태이므로 천체는 원운동을 할 것이 분명하다고 추론했다.

(그리스인들이 과학에서 연역법을 사용한 사례)

 

케플러는 2000년 동안 지배력을 행사했던 원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었을까?

​화성의 공전궤도를 그리다가 어려움을 겪은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케플러가 관찰에 근거하여 내놓았던 가장 정확한 원은 약간 기우뚱한 형태였다. 그가 그리스적 사고방식에 붙들려 있었다면 그 정도의 사소한 오차는 무시했을 것이다.

원래 물리적 대상은 기하학적 이상과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케플러는 독실한 루터파 교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선이 원을 이루기를 원하신다면 정확한 원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것이 정확한 원이 아니라면 무언가 다른 것임이 분명했다. 이상적인 원에서 제멋대로 벗어난 것으로 대충 정리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이러한 신학적 확신에 힘입어 케플러는 6년에 걸친 지적 분투와 수천 쪽이 넘는 과학적 계산 끝에 마침내 타원 개념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나중에 케플러는 화성 궤도의 사소한 오차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부르며 고마워했다.

그것이 그가 최대의 과학적 돌파구를 열도록 박차를 가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의 주된 목표가 "하나님이 부과하시고 수학의 언어로 우리에게 계시하신 합리적 질서와 조화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갈릴레이도 케플러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수학적 구조로 창조하셨다고 믿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 확신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 유명한 '갈릴레이 논쟁'의 핵심에 바로 이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흔히 갈릴레이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옹호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는 식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당시에 태양중심설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을 측정 도구로만 쓴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태양중심설과 지구중심설(천동설)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할 만큼 경험적 자료가 충분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당시 천문학의 주된 실용적 용도는 항해였는데, 두 체계 모두 항해에 활용하기에 무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들어맞기만 하면 지동설이든 천동설이든 사용할 의향이 있었고, 그것이 물리적으로 옳은지의 여부는 염려하지 않았다.

갈릴레이가 논쟁에 말려든 이유는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유용한 측정 도구일 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옳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관건은 수학적 진리의 지위였다. 수학은 물리계에서 무엇이 옳은지 말해 주는가? 이것은 신학적 질문이 아니라 철학적 질문이었다. 그리고 갈릴레이의 주된 적수는 교회 사람들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를 신봉하는 대학교의 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드는 데 수학이 크게 기여했다고 보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의 핵심 특징이 양이 아니라 뜨거움과 차가움, 젖음과 마름, 부드러움과 단단함 같은 '질'이라고 보았다. 당시 대학에서는 수학의 지위가 물리학보다 훨씬 낮았다. 수학자 따위가 물리학자에게 어떤 이론을 받아들여라 마라 지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갈릴레이의 적수였던 피사 대학 철학교수의 말에서 당시의 사고방식을 읽어낼 수 있다.

"자연은 사실을 수학적 추론의 방법으로 입증하려 하는 이들은 진리에서 멀어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수학적 논증으로 자연의 특성을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정신이 나간 사람이다. 두 과학은 성질이 전혀 다르다."

강연 시간에 이 인용문을 읽어 주면 청중들은 어김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오늘날에는 수학 공식을 써서 자연을 설명하는 일이 과학이라고 당연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갈릴레이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하나님이 수학의 언어로 자연의 책을 쓰셨다고 선언했을 때, 그것은 도발적인 언사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갈릴레이 이야기는 흔히 과학과 종교의 갈등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올바른 자연철학이 무엇인가를 놓고 그리스도인들끼리 벌인 싸움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질이냐, 갈릴레오의 양이냐?

갈릴레이의 승리는 곧 자연이 수학적 청사진 위에 세워졌다는 생각의 승리였다.

- [세이빙 다빈치]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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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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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에 대하여

 

 

 

책 제목: 과학의 영혼

 

저자: 낸시 피어시&찰스 택스턴

 

109~113page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앞서 언급된 세 가지 전통들은 서로 혼합되어 상호간에 영향을 미치면서 일종의 하이브리드(hybrid)를 창출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뉴턴(1642~1727)은 얼핏 보기에도 기계론자처럼 보이므로, 후대의 학자들은 그의 물리학을 과학에 대한 기계론적 접근의 전형으로 여긴다. 그의 저작 또한 이런 추정에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했다.

 

 

 

뉴턴은 신을 위대한 기술자로 이해했기에, 행성체계의 창조자는 역학과 기하학에 능숙한 존재임이 틀림 없다고 기술했다.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the law of universal gravitation)은 지구상과 천체상의 물체에 동일한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지구상의 물체와 전체상의 물체가 서로 대조되는 물질로 구성되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익숙했던 당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또한 빛에 대한 실험으로 빛은 다양한 중간 매개체를 통과했을 때에도 역학의 법칙을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증명했는데, 이는 빛을 영적 상징이라고 이해하던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주장을 뒤엎은 것이었다. 그는 빛을 입자들의 흐름으로 해석했는데, 이는 보일의 화학에 관한 견해와 유사한 것이었다.

 

 

 

 

더욱이 뉴턴은 신플라톤주의의 세계영혼(World Soul)에 관한 주장에 강력하게 반박하였는데, 이는 그것이 신으로 간주될 때 범신론에 가까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는 [제네럴 스콜리움](General Scholium)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존재는 세상의 영혼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것의 주인으로서 만물을 다스린다. … 그리고 신성은, 신을 세상의 영혼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상상처럼, 신 자신의 몸에 대한 지배력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종들에 대한 지배력이다.

 

 

 

결과적으로 볼테르와 다른 계몽주의자들은 뉴턴의 업적을 전혀 다른 기계론적 세계관을 장려하는데 사용한 것이었다.

 

그들은 성경적 창조주를 우주라는 태엽을 감은 후에 그대로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는 이신론적 시계공으로 축소해 버렸다. 경제학자 존 키네스(John Maynard Keynes)의 말을 빌리면, 뉴턴은 우리로 하여금 냉철하고 무미건조한 이성으로 사고하도록 가르친.. 현대과학의 처음이자 가장 뛰어난 과학자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뉴턴 자신은 이신론자도 합리론자도 아니었다. 그는 기계적인 세상의 질서 속에서도 기계적인 세계 이상의 것에 대한 증거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살아있는 지적 창조주였다.

 

 

[제너럴 스콜리움]이란 책에서 뉴턴은 가장 아름다운 체계인 태양과 행성, 그리고 혜성은 오직 지적이고 능력이 가득한 존재의 지혜와 지배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광학[Optics]에서는 과학의 임무를 결코 기계적이지 않은 첫째 원인에 도달할 때까지 원인을 결과로부터 추론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뉴턴이 생각하기에 과학의 가장 유용한 혜택은 종교적이며 도덕적인 것이었다.

 

 

 

과학은 우리에게 첫째 원인이 무엇인지, 그가 무슨 힘으로 우리를 지배하는지, 그리고 그로부터 우리가 받아 누리는 혜택이 무엇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서로를 향한 우리의 의무만이 아니라 그를 향한 우리의 의무도 자연의 빛에 의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더욱이 뉴턴이 이룩한 대부분의 과학적 업적의 동기들이 변증적이었다는 것은 이미 그가 살던 시대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로저 코테스(Roger Cotes)는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 재판 서문에서 이 책이 무신론자들의 공격에 대한 가장 안전한 보호책이 될 것이며, 불경건한 무리들에 대항하는 미사일이 될 것이다고 기록했다.

 

 

 

그렇다면, 뉴턴은 기계론자였는가? 최근 뉴턴의 철학적 입장을 명확히 하기 위해 많은 양의 글들이 집필되었다. 키네스는 뉴턴의 필사본을 연구한 후, 뉴턴에 대한 표준적 견해와는 달리, 뉴턴이 상징과 마술에 매혹되어서 신플라톤주의적 입장을 취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왜 내가 뉴턴을 마술사라고 부르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는 우주를 바라보면서 이 우주 안에 담겨 있는 모든 것을 수수께끼로 보았는데, 이는 순수한 사고를 어떤 증거에 적용했을 때 비로소 해독될 수 있는 비밀이었고, 신이 세상에 내리신 어떤 신비로운 실마리였다. …. 그는 우주를 전능자가 만들어 놓은 암호문으로 간주했다.

 

 

 

키네스는 뉴턴이 이성의 시대의 첫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마지막 마술사였다고 결론지었다. 역사학자 라탄시(P. M. Rattansi)도 비슷한 맥락에서 뉴턴을 신플라톤주의의 전통 위에 올려놓았다. 뉴턴은 신플라톤주의적 전통의 능동적 원리를 채용하여, 이를 이 세상에서 신적 행위의 통로로 간주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중력을 능동적 원리의 가장 중요한 실례로 간주했다. 따라서 라탄시는 힘의 개념이 뉴턴에게는 지각의 세계에서 신의 현시로 보였다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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