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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과학 사이의 논쟁들]

 

갈릴레오 논쟁에 대한 오해

 

 

 

책 제목: 과학의 영혼

 

54page ~5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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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개별적 신자들을 분리하게 되면 학문으로서의 과학에 대한 기독교의 지지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근대 초기의 몇몇 과학자들은 개인적으로는 종교적 신념을 굳게 지킨 반면, 정치적 차원에서는 교회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종교적 탄압에 대한 교과서적 사건이 바로 갈릴레오의 경우이다. 이 사건에 대한 표준적 해설은 제이콥 브로노우스키(Jacob Bronowski) [인간의 등정](The Ascent of Man)이라는 인기 텔레비전 시리즈에 나타나는데, 여기에서는 갈릴레오를 가톨릭의 종교재판법정(the Inquisition)에 기소된 선과 악 사이의 단순한 대결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역사학자 마틴 루드윅(Martin Rudwick)은 이 시리즈를 과학자 브로노우스키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 과학적 승리주의’(scientific triumphalism)의 한 예라고 비난했다. 루드윅은 브로노우스키가 다룬 갈릴레오의 재판은 수집 가능한 역사적 연구 결과를 무시하는 의도적 선택에서 비롯된 모조품(travesty)이었다고 주장한다.

 

 

 

 

 

루드윅이 언급한 역사적 연구 결과란 과학과 종교 사이의 단순한 대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관련된 증거물들을 가리킨다.

 

갈릴레오에 관한 현대 저작들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갈릴레오의 범죄](The Crime of Galileo)라는 책의 저자인 조지오 드산티야나(Giorgio de Santillana)는 갈릴레오 사건이 한 유명한 과학자와 종교적 교리 사이의 대결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역설적으로 교회내 지성인들의 다수파는 갈릴레오를 지지한 반면, 그에 대한 가장 분명한 반대는 세속적 견해, 즉 대학의 철학자들로부터 나왔다고 그는 지적한다.

 

갈릴레오를 로마로 귀한케 해 종교재판법정의 질문에 답하도록 명령했던 교황조차도 한 때 갈릴레오의 지지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사실, 대체적으로 가톨릭교회에서는 과학으로서 갈릴레오의 이론에 대하여 어떤 논쟁도 없었다. 다만 교회의 반론은 갈릴레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위시한 모든 형이상학적, 영적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회적 결과들을 논박했던 것과 관련된다.

 

과학철학자 필립 프랭크(Philipp Frank)가 설명하듯이, 갈릴레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공격한 것이 그렇게 심각하게 다루어졌던 이유는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종교적 그리고 도덕적 법률의 형성에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었기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자신의 최상의 본질을 충족시키기 위한 윤리적 책무감에 의해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객체(object) 또한 그 이상적 본질, 즉 목적이나 형태를 충족하기 위한 내적 몸부림에 의해 움직이는 유사 유기체(a quasi-organic entity)라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객체는 밀고 당기는 기계적 힘보다는 윤리적 몸부림에 더 가까운 내재적 경향들에 의하여 움직인다.

 

 

 

이런 내재적 경향들 중 하나가 바로 우주에 있어서 자연적 위치를 향하려는 충동(impulse)이다. 즉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불꽃은 위로 올라가고 바위는 아래로 떨어지는데, 그 이유는 모든 객체가 자연적 위치를 향하여 몸부림치는 경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물리적 위치는 고상함의 정도와 관련된 것으로, 우주의 중심은 가장 천한 것이고 천상의 영역은 가장 고상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과학적으로 연구된 물리적 위계질서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위계질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즉 물리적 세계에서의 질서는 인간 사회의 질서와 관련되어 있었다.

 

 

 

성직자들이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과 우주론을 포기하는 것에 저항하였던 이유는 이들이 도덕적이고 사회적 삶의 전체적 비전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연관성이 사라지게 될 경우, 성직자들은 도덕성 자체가 파괴될 것이라고 두려워하였다. 따라서 이들에게 갈릴레오는 그릇되고 위험한 교리를 내세우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메리 헤스(Mary Hesse)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렇게 새롭고 위험한 견해들은 그 당시에 교리적으로 이들을 지지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 없이주창되었다.

 

그리고 당시에 이용 가능한 증거가 이론을 뒷받침하지 않을 때, 이에 대한 저항은 비과학적인 것도 비이성적인 것도 아니었다. 헤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그들(위험한 견해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든 근시안적 견해 때문에 교회의 대표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를 지니게 되었다. 그것은 당시에, 교회 대표자들이 생각하기에, 그들을 지지해 줄 충분한 증거물도 지니지 못한 채 무책임한 공상에 의해 자신들의 세계의 모든 구조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과학철학자 제롬 라베츠(Jerome Ravetz)는 갈릴레오와 로마교회 사이의 대결에 관한 바른 이해는 사회적 요소들을 염두에 두어야 가능하다고 보았다. 가톨릭의 위계질서는 당시 개신교의 도전에 대한 반응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한 헌신을 재다짐하였다.

 

따라서 갈릴레오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공격은 적군에게 탄환을 제공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게다가 대학과 교회의 연장자들인 기성세대의 엘리트들과 갈릴레오가 소속되었던 실질적 사고를 지닌 신진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생생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 때에 자신의 작품을 라틴어가 아닌 지역어로 발행하기로 한 갈릴레오의 결정은 기성세대 엘리트들을 향한 공격이었으며, 이는 더 넓은 독자층으로 지적 리더십을 옮기기 위한 폭 넓은 전략이었다.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양측 모두 보기 흉한 계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갈릴레오의 세력을 격감시키기 위해 비열한 방법과 인격적 원환을 사용했고, 이에 맞서 갈릴레오는 의도적으로 선동적이며 선전적 글들을 통하여 대항했다.

 

그의 [세계의 두 가지 원리적 체제에 관한 대화](Dialogues Concerning the Two Principal Systems of the World)라는 작품에 심플리시오(Simplicio)라는 바보처럼 행동하는 익살꾼이 등장하는데, 이는 한 때 갈릴레오의 친구이자 지지자이었던 교황을 살짝 위장하면서 풍자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갈릴레오는 그의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 논쟁에 관한 전형적인 개작(retelling)은 갈릴레오가 교회에 대항하였으므로 그가 공론적 무신론자이거나 적어도 불가지론자(agnostic)였음이 틀림없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 앞에 진실하기 위해서 우리는 갈릴레오가 진정한 가톨릭 신자로서 교회이 종교적 교리 자체를 의심할 의도가 없었고, 단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유래된 과학적 체계를 의심했을 뿐이라는 그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실증주의적 접근은 갈리레오의 견해에 대한 종교적 변호를 단순히 권력에 의해 강요된 편법으로만 인정하고 이를 제외시킨다. 그러나 갈릴레오가 신자였으며 종교를 세계에 대한 진정한 정보의 근원으로서 과학과 나란히 간주했다는 그 자신의 주장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의 행동은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종교적 전통에 남아있기로 한 갈릴레오의 결정만이 왜 그가 교황을 위시한 모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그렇게 노력하였는가, 그리고 왜 그가 베네치아 공화국으로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하였는가에 대한 적절한 해답인 것처럼 보인다고 루드윅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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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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