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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셔머의 <도덕의 궤적> 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뒤에 Reference 를 제외하고도 650page에 달하는 상당한 볼륨을 자랑하는 책입니다.

 

이야기의 요지는 '과학'과 '이성'이 인류에 혼란을 초래하거나, 비도덕을 유발한 게 아니라 오히려 '진리', '정의', '자유'를 이끌어 냈다는 대담한 주장을 하는 책입니다. 대개 종교, 신앙 등의 기준이 '도덕과 윤리' 등의 '가치'를 지탱해 주고, 과학은 '객관적 사실'의 영역을 지탱해 준다는 논점들이 주를 이뤘었는데요.

(데니얼 데닛, 리처드 도킨스 등의 강성 유물론적 무신론을 지향하는 이들은 이러한 이분법적 논거도 반대를 하며, 종교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허구'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등의 책을 보면, 그의 강경한 어조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쓴 [도킨스의 망상]과 함께 보면 재미있습니다. 최근에 읽고 있는 존 레녹스의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을 보면 기독교적 변증이 상당히 잘 되어 있습니다. 도킨스와 레녹스, 맥그라스가 토론을 한 영상은 유투브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온건한 무신론 지지자들은 대개 종교의 역할을 일부 남겨두는 절충안을 지지해 왔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이러한 이분법은 논리적이지 않고, 사실이라고 보기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셔머는 이젠 '도덕' 등의 '가치'의 영역도 과학과 이성으로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 주장하며 그나마 남아 있던 종교의 자리를 가져가는 주장을 합니다.

책이 상당히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유신론을 지지하는 분들이 본다면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내용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과학과 이성이 가져다 주는 순기능에 대해선 즐겁게 읽어 내려가면 되겠지만 이 두툼한 책을 다 읽으면 과연 전체 논리에 설득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 집니다. 하지만 도킨스의 저서,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데니얼 데닛의 저서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건 전제 자체가 달라서 그런지 논리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맥그라스나 C.S Lewis가 쓴 변증서적이 훨씬 논리적이고 치밀해 보였습니다.

과학의 정의 자체가 생각보다 간단치 않은지라 여러 가지 논란이 있겠지만 이 책에 나온 내용을 간단히 고찰해 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과학]

과학은 과거나 현재에 관찰 또는 추론된 현상을 기술하고 해석하는 방법 체계로, 가설을 검증하고 이론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방법 체계라고 한 것은 과학이 사실들의 집합이라기보다는 과정에 가까움을 강조하는 것이고, 기술하고 해석한다는 것은 그 사실들이 자명하지 않음을 뜻한다.

관찰 또는 추론된 현상은, 자연에는 코끼리와 별처럼 우리가 볼 수 있는 대상들이 존재하지만 코끼리와 별의 진화처럼 우리가 추론해야 하는 대상들도 존재함을 뜻한다.

(개인 의견: 과학의 정의를 임의적으로 정하여서 자신들이 원하는 논거를 획득하고 있는데, 과연 직접 볼 수 없는 현상을 '추론'할 때, 그 가능성이 과학적 사실이라 불릴 만큼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과거나 현재라고 표현한 것은 과학의 도구들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뿐 아니라 과거에 일어난 현상을 이해하는 데도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과학에는 우주론, 고생물학, 지질학, 고고학, 그리고 인류 역사를 포함한 역사학이 있다.)

가설을 검증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 타당한 과학적 진리가 되려면 반드시 검증 가능해야 함을 뜻한다.

 

검증을 할 수 있어야 참임을 확증하거나 거짓임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을 구축한다는 것은, 과학의 목표가 수많은 검증된 가설들로부터 포괄적인 설명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과학적 방법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관찰하고, 그것을 토대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예측을 한 다음, 추가적인 관찰을 통해 그 예측이 맞는지 틀렸는지 검증함으로써 처음에 세운 가설을 확증하거나 반증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 과정에서 관찰, 결론의 도출, 예측의 검증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그런데 관찰을 통한 데이터 수집은 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는 가설에 따라 어떤 종류의 관찰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데, 이러한 가설들 자체는 관찰자의 교육, 문화, 특정한 편향을 통해 형성된다. 열쇠는 관찰이 쥐고 있다.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스탠리 에딩턴(Arthur Stanley Eddington) 경은 법적 은유를 사용해 그 점을 지적했다.

"물리학의 결론들이 참인지 가리는 최종 법정은 관찰이다."

과학은 모든 사실은 잠정적인 것으로서 언제든 도전받고 바뀔 수 있다. 그러므로 과학은 그 자체로 '어떤 것'이 아니라, 잠정적 결론들을 이끌어내는 발견 방법이다.

[이성]

 

 

 

이성이란,논리와 합리성을 사용함으로써 사실을 확인하고 입증하며, 그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고 믿음을 형성하는 인지 능력이다.

 

합리성(rationality)은 추측, 의견, 느낌 대신 이성을 사용해 사실과 증거를 바탕으로 한 신념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본인이 사실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실인 것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인지심리학 분야에서 지난 몇 십년 동안 이루어진 연구가 보여주듯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합리적인 계산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에 좌우되고, 편향에 눈멀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도덕 감정들에 이끌리는 존재다.

확증 편향, 사후 확신 편향, 자기 정당화 편향, 매몰비 편향, 현상유지 편향, 거점 효과, 근본적 귀인 오류는 우리가 증거를 무시한 채 사실이기를 바라는 것을 실제 사실로 믿게끔 만드는 뇌의 수많은 '동기화된 추론' 방식들 가운데 단 몇 가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성과 합리성은 우리 뇌의 특징적 요소로 자리 잡았는데, 패턴과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일(이것을 학습이라고 부른다)을 위해 진화한 그러한 능력이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환경에서 생존과 번성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인지 구조의 일부가 된 이성이라는 능력은 일단 생긴 뒤에는 애초에 진화할 때는 의도하지 않았던 문제들을 분석하는 데 투입될 수 있다.

핑커는 이것을 열려있는 조합적 추론 체계라고 부른다.

"이성은 식량을 마련하고 동맹을 다지는 것 같은 일상적 문제들을 위해 진화했지만, 다른 명제들의 논리적 귀결로서 따라 나오는 명제들에 쓰이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이러한 능력은 도덕에 중요하게 쓰이는데, "만일 어떤 종의 구성원들이 이성을 이용해 서로를 설득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그러한 능력을 발휘할 충분한 기회가 있다면, 그 종은 조만간 비폭력을 포함한 호혜적 배려가 서로에게 이익임을 발견하고 그러한 능력을 점점 더 광범위하게 활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 의견: 핑커의 설명은 진화 생물학을 '참'으로 전제한 상태에서 '이성'의 진화를 설명해 내고 있다. 독창적인 '가설' 정도로 간주하고 넘어가도 될 것 같다.)

 

수렵-채집인들이 하는 것처럼 발자취로 동물의 움직임을 추론하는 것은 명백히 생존에 도움이 되고, 우리는 자동차를 몰고 상점에 가는 것에서부터 달에 로켓을 쏘아 올리는 것까지 모든 일에 그러한 추론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과학사가이자 동물 추적 전문가인 루이스 리벤버그(Louis Liebenberg)는 우리의 과학적 추론 능력은 조상들이 발전시킨 사냥감을 추적하는 기술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리벤버그가 찾아낸 추적과 과학적 방법의 유비 관계는 흥미롭고도 중요한 사실들을 드러낸다.

"추적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 정보가 수집되면 가설은 수정되거나 더 나은 가설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동물의 행동에 대한 가설이 세워져 있으면, 이 가설로부터 그 동물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예측들이 맞는지 틀린지 점검하면서 가설을 검증하는 작업이 계속된다."

리벤버그는 조직적인 추적('그 동물이 무엇을 하고 있었고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자세히 알 때까지 단서에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것')과 사변적인 추적('단서들에 대한 초기 해석, 그 동물의 행동에 대한 지식, 그리고 지형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작업 가설을 세우는 것'으로, 이러한 작업 가설은 검증된 이론적 가설이 되거나, 확증되지 않을 경우 그 동물의 행방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이끌어낸다.)을 구별한다.

사변적인 추적에는 '마음 이론'(theory of mind, ToM)' 또는 '마음 읽기(mind reading)'라고 부르는 또 다른 인지 과정이 수반되는데, 그 과정에서 추적자는 자신이 쫓고 있는 동물의 마음이 되어 그 동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상상함으로써 그 동물의 행동을 예측한다.

리벤버그는 고고학 및 인류학 증거를 토대로 인간은 적어도 200만 년전부터(호모 에렉투스 때부터) 사냥을 하고 조직적인 추적을 했으며, 적어도 10만 년 전부터 사변적 추적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러한 인지 능력이 언제 생겼든, 사자가 어젯밤에 여기서 잤다는 사실을 유추하는 신경 구조가 일단 자리를 잡으면, 사자를 다른 동물이나 사물로, '이곳'을 '저곳'으로, '어젯밤'을 '내일 밤'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러한 추론 과정의 대상들과 시간 소요들은 서로 교환 가능하다.

오늘날의 예를 들면, 우리가 구구단을 외워서 7 곱하기 5가 35임을 알면, 5 곱하기 7도 35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이 방정식에서 5와 7은 교환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잡아먹을 동물을 추적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추론 능력들을 위해 진화한 신경계의 부산물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목적을 위해 진화한 뇌가 다른 목적에 쓰일 수 있으며, (먹잇감에서부터 사람들까지) 수많은 조합과 옵션을 아우르는 한 방정식의 X항과 Y항을 대체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은 우리가 다른 도덕적 행위자의 관점을 취할 수 있게 하고 따라서 도덕적 추론의 바탕이 되는 인지 구조다.

-[도덕의 궤적] 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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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 몇 십 년간 이탈리아에서 태양중심 모델에 관한 새로운 논란이 시작되었다.

이번 논쟁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계 이론의 대표적인 옹호자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입장을 둘러싼 것이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결국 가톨릭교회는 갈릴레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고, 오늘날 이는 일부 교회 관료들이 저지른 명백한 판단 착오로 인식되고 있다.

​처음에 갈릴레이의 의견은 고위 성직자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그가 교황의 총신 치암폴리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일부 작용했다. 치암폴리의 권력 실추로 갈릴레이는 교황 측근의 지지를 잃었고, 결국 적들의 공격 대상이 되어 유죄 선고까지 받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비록 갈릴레이를 둘러싼 논쟁이 과학 대 종교, 또는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묘사되기는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성경의 올바른 해석에 있다.

과거에는 이 논쟁과 관련된 신학적, 더 정확하게 해석학적 쟁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올바르게 조명되지 않았다. 이 논쟁에 관심을 가진 학자 상당수가 과학자나 과학 역사가였다.

고도로 복잡했던 시대에 성경 해석에 관한 논쟁의 얽히고설킨 내막을 잘모르는 사람들이 벌였다는 사실도 부분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여하튼 갈릴레이와 그의 비판자들이 벌인 논쟁에서 최대 쟁점은 특정 성경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논쟁에서 조정(accommodation)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점을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1615년 1월 발표한 중요한 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갈멜 수도사였던 포스카리니(Paolo Antonio Foscarini)는 <피타고라스학파와 코페르니쿠스의 의견에 관한 서한,Letter on the Opinion of the Pythagoreans and Copernicus>에서 태양중심 모델이 성경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포스카리니-

 

포스카리니는 그의 분석에서 어떤 새로운 성경 해석 원리를 내세우지 않았고, 오히려 전통적인 해석 방식을 제시하고 적용했다.

성경에서 ​부적절하고 부적당하다고 여겨질 만한 속성을 신이나 피조물에 부여하려면 다음 방법 중 하나 이상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야 한다.

​[1] 은유나 비교, 비유의 목적을 지닌 것

[2] 우리의 고찰과 판단, 이해, 인식 등의 방식에 맞게 말한 것

[3] 서민의 생각과 보편적인 화법에 맞게 말한 것


(Blackwell, 1991, pp.94~95)

포스카리니가 말한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 세 번째 성경 해석법인 '조정'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말한 대로 이 해석법의 기원은 초기 기독교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에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았다.


포스카리니는 그가 채택한 해석법이 아니라, 그 해석법을 적용한 성경 구절에서 혁신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포스카리니는 ​당시까지 많은 이들이 문자 그대로 해석하던 일부 구절에 조정 해석법을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지구가 정지해 있고 태양이 움직인다는 의미로 여겨지던 구절에 대한 것이었다. 포스카리니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성경은 우리의 이해 방식과 형세에 따라 우리를 고려해서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내용이 우리와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인간의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고방식에 맞게 묘사된다. 즉 지구는 멈춰있고 움직이지 않으며 태양이 그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를 생각해서 평범하고 보편적인 말투로 얘기한다. 우리에게는 정말 지구가 한가운데 단단히 고정된 상태에서 태양이 그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이지 그 반대로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Blackwell, 1991, p.95)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더욱 신봉하게 된 갈릴레이 역시 포스카리니와 비슷한 성경 해석법을 채택한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관건인데 갈릴레이 비판자들은 성경의 몇몇 구절이 갈릴레이의 의견과 반대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 10장 12~13절에는 여호수아의 명령으로 태양이 멈췄다고 하는데, 바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없이 입증한 것이 아닌가?

 

갈릴레이는 <대공비 크리스티나께 드리는 서한, Letter to the Grand Contess Christina>에서 그와 같은 표현은 단지 보편적 화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맞섰다.

여호수아가 천체역학의 복잡한 원리를 알았을리 없고, 결국 그는 '조정된' 화법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두 가지 근거로 공식적인 지탄을 받았다.

[1] 성경은 '단어들의 올바른 의미'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직해적인 해석법이 힘을 얻으면서 포스카리니가 택했던 조정된 해석법은 거부되었다.

그런데도 두 가지 다 기독교 신학계에서 타당성을 인정받았고, 오랜 역사를 지닌 해석 방법이라 문제의 성구에 어느 쪽이 적합한가를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졌다.

[2] 성경은 '교황 성하와 박학한 신학자들의 공통된 해석과 이해에 따라' 해석해야 했다.

다시 말해 그때까지 중요한 인물 중 포스카리니의 해석을 따른 이가 없었고, 따라서 그 해석은 새로운 것이므로 일축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포스카리니와 갈릴레이의 견해는 기독교 사상 전례가 없는 새로운 주장인 만큼 거부해야 했다.

두 번째 논점은 매우 중요하다. 향후 오랫동안 계속된 프로테스탄티즘과 로마가톨릭 간의 치열한 논쟁의 맥락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새롭게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정통 기독교의 회복인지를 따졌던 이 논쟁은 17세기에 일어난 30년 전쟁(1618~1648) 때문에 더욱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가톨릭 전통의 불변성이라는 개념은 로마가톨릭이 프로테스탄티즘에 맞서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로마가톨릭을 옹호하는 대표적 인물인 보쉬에(Jacques-Benigne Bossuet, 1627~1704)가 1688년 그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교회의 가르침은 언제나 한결같다....복음은 이전의 내용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과거에 언급되지 않았더너 뭔가가 신앙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이단, 즉 정통 교의에서 벗어난 것이다. 거짓된 교의는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 언제 나타나든지 즉시 알아볼 수 있다. 새로운 개념이니까..... (Chadwick, 1957, p.20)

17세기가 시작될 무렵 이러한 주장들은 널리 확산되었고, 포스카리니에 대한 공식적인 비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가 제안한 해석법은 전례가 없었고 그 이유만으로도 옳지 않았다.

​이처럼 성경 해석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은 복잡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극도로 정치화된 일촉즉발의 시대에 어떤 새로운 접근법이라도 용인했다가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적법성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일까 두려워해 당시의 신학 논쟁은 크게 편향되어 있었다.

어떤 중요한 사안에 대해 로마가톨릭의 가르침이 '바뀌었음'을 인정한다면 필시 프로테스탄티즘 핵심 교의, 즉 이제까지 로마가톨릭 교회가 '새로운 것'으로 여겨 거부해왔던 가르침을 정통 교의로 받아들이라는 요구로 이어질 수 있었다.

따라서 ​갈릴레이의 견해가 저항에 부딪힌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신학적으로 새로운 개념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특정 성구에 대한 갈릴레이의 해석을 수용한다면 가톨릭의 프로테스탄티즘 비판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었다.

프로테스탄티즘에서 특정 성구에 새로운, 새롭기 때문에 잘못된 해석을 도입했다는 주장에 기초한 비판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갈릴레이의 주장이 배척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이와 같은 간단한 분석을 통해 갈릴레이 논쟁의 배경에 성경의 해석과 과거 교의의 전승을 두고 갈등을 빚은 프로테스탄티즘과 가톨릭교회의 관계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행히도 갈릴레이는 이 논쟁의 십자포화와 암류에 휩쓸렸던 것이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과학과 종교] 에서 발췌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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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3년 5월 발표된 코페르니쿠스의 논문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모델은 17세기 초반 20여 년간 케플러의 정밀한 연구가 이루어진 뒤에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중세 신학자들은 '지구중심설'이라고도 불리는 과거의 모델을 정설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지구중심설이라는 안경을 쓰고 성구를 읽는 데 익숙한 나머지 새로운 관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구 중심설=천동설)
 

따라서 성경과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다룬 최초의 글로 인정받은 레티쿠스(G. J. Rheticus)의 <성경과 지구의 운행에 관한 논문, Treatise on Holy Scripture and the Motion of the Earth>과 같이 초기에 발표된 코페르니쿠스 이론에 대한 변론에서는 두 가지 쟁점을 다뤄야 했다.

[1]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회전한다는 결론으로 이끌 관측 증거를 제시해야 했다.

[2] 오랫동안 지구중심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해석되었던 성경과 이 견해가 사실은 부합한다는 점을 증명해야 했다.

앞서 말했듯이 관측 증거는 나중에 케플러가 수정한 코페르니쿠스 모델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신학적 관점에서 이 모델을 본다면? 이 모델에 따라 지구중심의 우주와 완전히 결별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태양중심설이 부상하면서 신학자들은 일부 성구의 해석 방법을 재검토할 수 밖에 없었다.

 

기독교의 전통적인 성경 해석법은 크게 세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방법을 살펴보고 과학과 종교의 대화라는 주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보자.

[1] 성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직해적(literal) 접근법이 있다. 창세기 1장을 직해적으로 해석하면 창조가 하루를 24시간으로 하여 6일에 걸쳐 일어난 것이 된다.

[2] 비직해적, 즉 우의적(allegorical) 접근법으로 성경의 어떤 부분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적절치 않은 문체로 쓰였음을 지적한다. 중세에는 성경에서 세 가지 비직해적 의미가 인정되었다. 이는 16세기의 많은 학자들이 상당히 정교한 표현으로 여겼던 것들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창세기의 도입부는 시적이거나 우의적인 표현으로서, 여기서 신학과 윤리 원칙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반면 문자 그대로 지구의 기원을 전달하는 역사적 설명은 아니다.

[3] 조정(accommodation)의 개념에 입각한 접근법이다. 이는 성경의 해석과 자연과학의 상호작용 측면에서 볼 때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접근법이다. 여기서는 계시(revelation)가 문화 및 인류학적 조건이 부여된 방법과 형태로 일어나 그 결과를 적절히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는 유대교와 그 뒤에 이어진 기독교 신학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초기 기독교 교부 시대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16세기에 와서야 완성된 모습을 갖췄다.

 

이 관점에 따르면 창세기 도입부에 사용된 언어와 이미지는 초기 독자들의 문화적 환경에 적합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초기 독자에게 맞게 '조정된' 형태와 용어 속에 표현된 핵심 개념을 추출하여 해석해야 한다.

세 번째 접근법은 16~17세기에 신학과 천문학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종교개혁가로 유명한 칼뱅(John Calvin, 1509~1564)은 자연과학이 인정받고 발전하는 데 두 가지 측면에서 크게 공헌했다.

(장 칼뱅)


[1]자연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활동을 적극 장려했다.

[2]앞서 설명한 '조정'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과학 연구 발전을 가로막던 큰 장애물을 없앴다.

그의 첫 번째 ​공헌은 특히 창조의 질서를 강조한 것과 관련이 있다. 물리적 세상과 인체 모두 신의 지혜와 개성을 입증하는 증거다. 따라서 ​칼뱅은 천문학과 의학 연구를 장려했다.

 

자연세계를 신학보다 더 깊이 탐구하면 창조의 질서와 창조주의 지혜를 밝힐 증거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칼뱅은 자연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새로운 종교적 동기를 부여했다.

칼뱅이 두 번째로 크게 기여한 것은 자연과학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물이었던 성경 직해주의를 타파한 것이다. 성경의 주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성경은 천문학이나 지리학, 생물학 교과서가 아니다.


그리고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신이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능력에 맞추어 '적절히 조정'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계시가 일어나려면 신이 인간의 수준으로 내려와야 한다. 인간이 한정된 능력으로 수용할 수 있게 단계를 낮춘, 즉 '조정된' 신의 모습이 계시를 통해 전달된다.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기 위해 몸을 굽히는 것처럼 신 역시 인간의 눈높이에 맞게 스스로 굽히고 낮춘다.


​계시는 신이 보여주는 겸손의 행위인 것이다.

과학 이론화에 관한 이 두가지 관점은 특히 17세기에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영국의 저술가 라이트(Edward Wright)는 길버트(William Gilbert)가 쓴 자기학 관련 논문 (1600)의 서문에서 성경 직해주의자들에 맞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옹호했다.

​성경은 물리학을 다룬 책이 아니며, 성경의 화법은 '유모가 어린아이를 대하듯 보통 사람의 이해력과 말투에 맞게 조정된 것'이라고 주장했다.(Hooykaas, 1972, pp.122~123). 이 두 가지 주장 모두 칼뱅에서 비롯된 것인만큼 칼뱅은 자연과학의 출현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과학과 종교] 에서 발췌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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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의 갈등이 첨예한 요즘 분위기에서 둘 간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책입니다. 과학사에서 잘못 알려진 역사적 진실을 추적해 보기도 하고, 맥그라스 특유의 논리를 바탕으로 섯부른 이분법적 접근이나 굴드 식 NOMA 개념을 거부하는 책입니다. 평소 맥그라스의 저서를 좋아한다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책이 될 것이며 이 책을 입문서로 시작해 개론서들을 찾아 읽으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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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근대에 인류가 세 가지 '자기애적 상처'(narcissistic wound)를 입었고, 각각의 상처는 인간의 자긍심에 대한 도전이었다고 단언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 퍼옴)​


첫 번째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 있음을 알려준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입힌 상처였다.

두 번째 상처는 심지어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음을 입증한 다윈주의였다.

세 번째는 인간이 자신의 한정된 영역에서도 주인이 아님을 밝히는 프로이트 본인이 입힌 상처라고 그는 당당히 밝혔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러한 혁명적 전환은 전자가 가져온 고통과 상처를 가중시키면서 인류의 위치와 중요성에 관한 철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다. 프로이트의 견해가 갖는 종교적 의미는 이 책에서 나중에 다시 조명할 것이다.

​여기서는 그 '상처' 중 첫 번째인 코페르니쿠스 혁명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각 시대는 그 시대의 세계관을 뒷밤침하는 일련의 확립된 신념들이 존재한다.

중세도 예외는 아니다. 중세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태양과 다른 천체(달, 행성 등)가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는 믿음이었다. '지구 중심적' 우주관은 자명한 사실로 간주되었다.

성경도 이러한 믿음을 근간으로 해석했다 .많은 성경의 해석에 지구중심적 가정이 적용되었다.

현재 사용 중인 언어 대부분도 지구중심적 세계관을 여전히 반영한다.

예를 들어 현대 영어에서도 '해가 오전 7시 33분에 떠올랐다.'고 말하는데, 여기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믿음이 반영되어 있다.

태양계의 지구중심 모델이 참이냐 거짓이냐는 일상생활에 별 영향을 주지 않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중세 초기에 가장 널리 받아들였던 우주관은 2세기 상반기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Claudios Ptolemaeos)가 구상한 것이었다. 그는 <알마게스트,Almagest>에서 달과 행성의 운행에 관한 기존의 개념을 집대성하면서 다음 가정에 근거하여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있다.

2. 모든 천체는 원을 그리며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

3. 회전은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그 중심 역시 또 다른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형태를 띤다. 본래 히파르코스(Hipparchos)가 주창했던 이 중심론은 '주전원'(epicycle), 즉 원 운동 위에 원 운동이 부여된다는 개념에 근거한다.

행성과 항성의 움직임이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관측되면서 이론은 갈수록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주전원을 추가하는 방법으로 모순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5세기 말 무렵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루기 힘든 이 모델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에 있었다. 하지만 무엇으로 대체한단 말인가?

16세기 들어 지구중심 모델은 태양 중심 모델, 즉 태양을 중심에 놓고 지구는 그 주위를 도는 많은 행성 중 하나라고 보는 관점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는 기존 모델과 완전한 결별을 뜻하며, 지난 1000년 간 인류의 실재관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임이 분명하다. 이 사고의 전환을 흔히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이라 부르며, 이것이 자리잡기까지 세 명의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폴란드 학자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동심원을 그리며 회전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 뿐 아니라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했다.


 

(코페르니쿠스- 퍼옴)


그러므로 항성과 행성이 움직이는 듯 보이는 것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조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모델은 차츰 버거워진 프톨레마이오스 모데렝 비해 단순하고 정밀하다는 장점을 지녔다. 그러나 이 모델 역시 모든 관측 데이터를 설명하지는 못했고, 이 이론을 받아들이려면 수정이 필요했다.

덴마크 학자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는 코펜하겐 인근 섬의 관측소에 있으면서 1576년부터 1592년까지 행성 운동에 관한 일련의 정밀 관측을 실시했다.

이 관측 자료는 케플러(Johann Kepler, 1571~1630)가 수정한 태양계 모델의 토대가 되었는데, 그는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2세가 사망한 뒤 브라헤가 보헤미아로 이주할 때까지 브라헤의 조수로 일했다.

(요하네스 케플러)

케플러는 행성인 화성의 운행을 관측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행성이 태양 주위를 원형 궤도를 그리며 돈다고 가정하는 코페르니쿠스 모델로는 실제 관측된 화성의 운행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609년 케플러는 화성 운행의 일반 원칙 두 가지를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

[1] 화성이 타원형 궤도로 회전하며, 이 때 태양은 두 초점 중 하나다

[2] 화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선은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면적을 휩쓸고 지나간다.

1619년경 그는 이 두 원칙을 나머지 행성에 확대 적용해 세 번째 원칙을 밝혀냈다.

[3] 행성의 공전 주기(행성이 태양 주위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의 제곱은 행성과 태양 간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케플러의 모델은 코페르니쿠스의 개념을 상당히 수정한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획기적인 새 모델은 개념이 정밀하고 단순한데도 행성의 궤도가 원형이라는 잘못된 가정 때문에 관측 데이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흥미롭게도 이 가정은 유클리드 고전 기하학에서 유래한 듯하다.

코페르니쿠스는 그리스 고전 철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원은 기하학적으로 완전한 형태지만 타원은 왜곡된 형태였다.  왜 자연이 기형적인 기하학 구조를 사용하겠는가?

-알리스터 맥그라스 [과학과 종교] 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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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정의에 대해 다루는 상당히 흥미로운 책입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과학철학자들의 답변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 봐야 할 좋은 개론서입니다. 칼 포퍼는 '반증주의'로 이름을 알린 학자인데 그의 이론에 입각해서 프로이트의 심리학이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 점성술을 바라본다면 이들은 '과학'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특정 학자의 정의가 '과학의 참 정의이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가 소개되어 있으며 저마다의 정의가 지닌 독창성을 중립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과학을 정의하는데도 이와 같이 단일한 결론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과학의 구체적인 내용들에 있어서는 더더욱 많은 논의와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상당히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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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는 자신의 반증주의에 기초하여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과학이라 믿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을 사이비라고 비판했다.

                             -칼 포퍼-

 

예를 들어 어린이를 익사시키려고 물 속에 집어던지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물속에 뛰어드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두 행동에 대해서 프로이트는 첫 번째 사람의 행동은 억압 본능으로 인한 고통에 그 원인이 있다고 설명할 것이다.

반면 두 번째 사람의 행동은 억압 본능이 '승화(sublimation)'된 것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프로이트를 이은 정신분석학자 아들러도 이렇게 서로 상반된 행동을 똑같은 원리로 설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에 따르면 첫 번째 사람은 열등감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죄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필요가 있었던 반면, 두 번째 사람은 열등감 때문에 고통은 받고 있었지만 자신이 그 아이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용감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보일 필요가 있었다.

 

즉 프로이트와 아들러 모​두 상반된 행동을 동일한 원리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포퍼는 바로 이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신분석학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설명하기 때문에 어떤 개별 사례들과도 양립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 이론을 반박할 수 있는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반박할 수 없는 이론이라면 그것은 진짜 과학이 아니다. 사이비요, 짝퉁이다. 포퍼는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한때 아들러 밑에서 방치된 아이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펴기도 했지만 정신분석학을 사이비로 규정하고 그들과 결별했다.

포퍼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도 반증 불가능한 사이비 과학이기는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가령 19세기 영국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정책이 도입되었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지배 계급은 빈민 계층의 후생 복리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마르크스 이론과 상충되어 보였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오히려 그런 사례가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우겼다. 그런 정책의 도입이야말로 자본가들이 곧 일어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저지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당근에 불과하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지도 않은 러시아에서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것은 마르크스 이론의 명백한 반증 사례인데도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얼버무렸다.

포퍼는 대학 시절 사회주의 학생연맹에 가입하여 한때 마르크스주의자로 살기도 했지만, 마르크스 이론이 갖는 경직성 때문에 그 이론을 사이비 과학으로 규정할 수 밖에 없었다.

포퍼가 사이비라는 딱지를 붙인 또 한 가지는 점성술(astrology)이다.

 

 

별의 위치, 모양, 밝기 등을 통해 국가의 안위나 개인의 운명을 예견하는 점성술은, ​서양에서는 아주 오래된 전통이다. 지금 우리로 치면 생시로 사주팔자를 보는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서양의 점이든 동양의 점이든 개인의 운명을 예견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포퍼는 점성술은 너무나 일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반박할 수 있는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가령 '올 한 해 운수 대통할 팔자야' 라는 점괘가 나왔다고 하자. 이 점괘가 정말로 맞는지 틀린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그 점괘를 받은 사람이 1년 내내 힘겨운 삶을 살다가 연말에 다시 점성술사를 찾아가 점괘가 틀렸으니 환불해 달라고 따진다면 점성술사는 어떻게 대응할까? "올해 큰 사고를 당할 뻔했는데 그걸 막은 게 운수대통이지 뭐냐?"라고 발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변명이 가능한 이유는 점성술 체계가 반증 불가능한 진술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포퍼는 점성술이 사이비 과학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쿤&포퍼,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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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에서 나는 여기서 제시한 자연신학이 상당한 설명 능력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것이 이치에 어긋나는 일은 아니다.

 

예측 능력이 없어 보이는 자연신학을 두고 그 자연신학이 어떻게 '설명을 해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과학 이론의 타당성을 평가할 수 있는 척도 중 하나는 그 이론이 새로운 현상들을 예견할 수 있느냐 여부다.

​이 점에서는 자연신학이 다소 한정된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곧 자연신학이 결함이 있고 수준이 낮은 '설명' 형태를 대변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설명'이라는 개념으로 생각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지레 짐작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이 문제는 과학 방법으로서 귀납법의 역할을 둘러싸고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과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사이에 벌어진 논쟁에서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다.

 

휴얼은 과학 방법에서는 새것을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밀은 단지 새로운 관찰 결과들을 예측하는 것과 기존 관찰 결과들을 이론에 수용하는 것(theoretical accommodation)을 심리적으로 구분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중요하다.

 

히치콕(Christopher Hitchcock)과 소버(Elliott Sober)는 근래 이 문제를 논하면서, 때로는 예측이 수용보다 우월할 수 있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고 주장했다.

 

​수용이 예측보다 우월한 상황들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처음부터 늘 변함없이 수용보다 예측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삼위일체 자연신학이란 것이 이미 알려진 관찰 결과들을 든든히 수용할 수 있다면, 이 자연신학이 새로운 관찰 결과들을 반드시 예측해 주지 않더라도 이 자연신학 자체가 이 신학이 내세우는 개념들에 충분히 정당성을 부여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수용이 ​과학 이론의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상황들을 역사 속에서 쉽게 사례를 찾아 제시할 수 있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아마도 가장 쉽게 살펴볼 수 있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주로 광범위한 관찰 데이터를 새롭게 설명해 주었는데, 이 데이터 중 일부는 ​다윈 자신이 결합한 것이었고, 다른 일부는 그보다 앞선 시대 사람들과 같은 시대 사람들이 한 일들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다윈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문제는 이런 관찰 결과들을 어떻게 커다란 발전 이론 안에 담아낼 수 있을까라는 문제였다.

 

자연선택설은 생물학 세계를 이전보다 더 심오하게 이해할 수 있는 유리한 지적 관찰 지점을 제공함으로써 놀랍거나 수수께끼 같은 현상들 - 가령 흔적 기관들이 계속해 존재하는 현상 같은 것-을 상당히 쉽게 이론으로 담아낼 수 있게 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예측은 이론을 선택할 때 어떤 역할을 하지만, 어떤 이론들은 예측이 부적절하거나 말 그대로 불가능한 실재나 상황들과 관련되어 있다. 자연신학이 주로 수용에 의존한다면, 그 자연신학은 과학의 좋은 벗이다.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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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설명하는 수학의 힘을 사람들이 마침내 받아들이게 된 것은 뉴턴의 연구 덕분이었다.

그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지구상의 친숙한 운동(대포알의 궤도)부터 멀리 떨어진 하늘의 운동(행성궤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자연현상을 단일한 수학 공식으로 기술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너무나 단순했다!

너무나 우아했다!

뉴턴이 과학계 최초의 슈퍼스타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극적 돌파구는 성경적 통찰을 통해 열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와 부패의 영역인 지구와 불변하고 영원한 곳으로 여겨지던 하늘을 날카롭게 구분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둘이 전혀 다른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판단했다.

지구상에서 작동하는 물리학의 원리를 별과 행성 같은 하늘의 천체들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은 거의 2000년 가까이 사실상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다.

그렇듯 유서 깊은 지적 전통이 어떻게 무너지게 되었을까?

그것은 성경의 창조 개념을 숙고한 결과였다.

클라인은 "하나님이 우주를 설계하셨으므로 모든 자연현상이 단일한 기본 계획을 따를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우주를 설계한 단일정신이 한 묶음의 기본 원리를 활용해 연관된 현상들을 다스릴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웠다.

뉴턴은 그러한 생각에 입각해 연구를 진행했고, 결국 하늘이 다른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우주는 통합된 코스모스다. 우주 어디서나 동일한 수학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

뉴턴은 신학을 과학 안에 엮어 넣었을 뿐 아니라, 과학을 이용해 신학을 옹호했다.

그는 과학의 '본업'이 기계적 인과관계의 사슬을 거슬러 올라가 '기계적이지 않은 것이 분명한 제 1원인', 곧 인격적 창조주에게까지 마침내 이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턴은 이러한 추론의 몇가지 사례를 제시했는데, 태양계의 절묘한 균형을 설명하려면 "맹목적이거나 우연적인" 자연의 원인만으로는 부족하고, "역학과 기하학에 대단히 능통한" 지적 원인을 상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뉴턴이 볼 때는 그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과학적 성과물인 중력 개념조차도 하나님의 증거였다.

중력은 질량과 전충성(물질이 공간을 메우는 성질) 같은 물질의 고유한 특성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뉴턴은 중력을 하나님이 세상을 직접, 적극적으로 다스리시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뉴턴은 시간과 공간을 포함한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이 사실 하나님의 특성이라고 보았다.

​절대시간은 "영원부터 영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지속이었다. 절대공간은 "무한부터 무한에 이르는" 하나님의 무소부재였다.

뉴턴 물리학이 본 우리는 말 그대로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한다.

하지만 결국 계몽주의 이론가들이 손을 썼고, 뉴턴의 새로운 과학도 세속화의 부식 과정을 거쳤다. 볼테르는 뉴턴의 연구 결과를 유럽 대륙에 소개했는데, 그 과정에서 위대한 과학자 뉴턴의 성경적 시각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 주도면밀함을 보여주었다.

대신에 그는 뉴턴의 물리학을 끌어다 계몽주의의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용했다.

뉴턴의 중력 개념이 유물론적으로 해석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우주를 붙드시는 창조주의 능력이 나타나는 방식이 아니라 물질 안에 내재하는 힘에 불과했다. 뉴턴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은 논리적 범주 정도로 축소되었다. 그의 이론은 결국 그가 반박하려 했던 유물론적 세계관으로 흡수되었다.

얄궂게도, 유물론적 세계관은 '뉴턴 세계관'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뉴턴이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을 세계관인데 말이다. 이 세계관은 우주를 변하지 않는 수학 법칙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기계로 그렸다. 수학적 모델은 과학뿐 아니라 사회, 정치, 도덕에도 적용되었다. 너무나 간단해 보였다. 갈릴레이는 경사면에서 공이 굴러 내려오는 것을 관찰한 끝에 움직이는 모든 물체의 가속도를 밝히는 수학 법칙을 발견했다.

뉴턴은 떨어지는 물체(일설에 따르면 사과)를 관찰하여 모든 물체에 작용하는 수학적 중력 법칙을 계산해 냈다.

동일한 방법론을 사회과학에 적용해서는 안 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몇 가지 단순한 사례를 관찰하면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보편법칙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한 역사가에 따르면, 18세기에는 "보편적 물리학의 관점에서 만물이 설명될 때가 멀지 않았다고 많은 이들이 믿었다."

물리학에서 통했던 수학적 방법이 다른 모둔 분야에서도 통할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되면 자연뿐 아니라 인간 본성을 지배할 수단까지 확보하게 될 터였다.

- [세이빙 다빈치]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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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케플러는 행성궤도가 타원형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발견했을까?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행성이 원궤도로 돈다고 생각했다.

 

맨 처음 이 생각을 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하늘이 '완전'하고 원이 '완전한' 형태이므로 천체는 원운동을 할 것이 분명하다고 추론했다.

(그리스인들이 과학에서 연역법을 사용한 사례)

 

케플러는 2000년 동안 지배력을 행사했던 원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었을까?

​화성의 공전궤도를 그리다가 어려움을 겪은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케플러가 관찰에 근거하여 내놓았던 가장 정확한 원은 약간 기우뚱한 형태였다. 그가 그리스적 사고방식에 붙들려 있었다면 그 정도의 사소한 오차는 무시했을 것이다.

원래 물리적 대상은 기하학적 이상과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케플러는 독실한 루터파 교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선이 원을 이루기를 원하신다면 정확한 원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것이 정확한 원이 아니라면 무언가 다른 것임이 분명했다. 이상적인 원에서 제멋대로 벗어난 것으로 대충 정리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이러한 신학적 확신에 힘입어 케플러는 6년에 걸친 지적 분투와 수천 쪽이 넘는 과학적 계산 끝에 마침내 타원 개념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나중에 케플러는 화성 궤도의 사소한 오차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부르며 고마워했다.

그것이 그가 최대의 과학적 돌파구를 열도록 박차를 가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의 주된 목표가 "하나님이 부과하시고 수학의 언어로 우리에게 계시하신 합리적 질서와 조화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갈릴레이도 케플러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수학적 구조로 창조하셨다고 믿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 확신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 유명한 '갈릴레이 논쟁'의 핵심에 바로 이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흔히 갈릴레이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옹호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는 식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당시에 태양중심설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을 측정 도구로만 쓴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태양중심설과 지구중심설(천동설)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할 만큼 경험적 자료가 충분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당시 천문학의 주된 실용적 용도는 항해였는데, 두 체계 모두 항해에 활용하기에 무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들어맞기만 하면 지동설이든 천동설이든 사용할 의향이 있었고, 그것이 물리적으로 옳은지의 여부는 염려하지 않았다.

갈릴레이가 논쟁에 말려든 이유는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유용한 측정 도구일 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옳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관건은 수학적 진리의 지위였다. 수학은 물리계에서 무엇이 옳은지 말해 주는가? 이것은 신학적 질문이 아니라 철학적 질문이었다. 그리고 갈릴레이의 주된 적수는 교회 사람들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를 신봉하는 대학교의 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드는 데 수학이 크게 기여했다고 보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의 핵심 특징이 양이 아니라 뜨거움과 차가움, 젖음과 마름, 부드러움과 단단함 같은 '질'이라고 보았다. 당시 대학에서는 수학의 지위가 물리학보다 훨씬 낮았다. 수학자 따위가 물리학자에게 어떤 이론을 받아들여라 마라 지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갈릴레이의 적수였던 피사 대학 철학교수의 말에서 당시의 사고방식을 읽어낼 수 있다.

"자연은 사실을 수학적 추론의 방법으로 입증하려 하는 이들은 진리에서 멀어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수학적 논증으로 자연의 특성을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정신이 나간 사람이다. 두 과학은 성질이 전혀 다르다."

강연 시간에 이 인용문을 읽어 주면 청중들은 어김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오늘날에는 수학 공식을 써서 자연을 설명하는 일이 과학이라고 당연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갈릴레이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하나님이 수학의 언어로 자연의 책을 쓰셨다고 선언했을 때, 그것은 도발적인 언사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갈릴레이 이야기는 흔히 과학과 종교의 갈등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올바른 자연철학이 무엇인가를 놓고 그리스도인들끼리 벌인 싸움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질이냐, 갈릴레오의 양이냐?

갈릴레이의 승리는 곧 자연이 수학적 청사진 위에 세워졌다는 생각의 승리였다.

- [세이빙 다빈치]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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